보건복지부가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제기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복지부 이태한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달 30일 전국보건소장협의회 창립 세미나에서 규제 중심의 의료정책의 한계를 반성하면서 건강보험 확충 방안을 제안했다.
이번 강연은 복지부의 고민을 솔직하게 밝히고, 의료계에 협조를 구했다는 평가이다.
이태한 실장은 "보장성의 압력은 늘어나지만, 정치권은 보험료를 올리지 말라고 한다"면서 "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텨왔으나, 고령화라는 핵폭탄이 다가오고 있어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이어 "공급자단체와 정부가 힘을 합쳐 국민을 설득하고, 보건의료에 투자하는 게 국민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가 저수가와 규제 중심의 정책을 인정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진수희 장관 시절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과 임채민 장관의 약가인하 등 중요한 의료정책이 나올 때마다 저수가 정책을 반성하는 내용이 보도자료의 단골 문구였다.
매번 복지부는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는데 이용했을 뿐 개선방안을 고민한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복지부 의료정책 실무책임자 입에서 현 의료정책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국민을 설득하자는 실천방안까지 제시했다.
이태한 실장이 건강보험 확충(보험료)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보장성 확대와 고령화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계를 압박하는 수가와 정책 등 억제책은 반발과 불신만 초래할 뿐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한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실제로 이 실장은 "어쩌면 영상검사가 현재의 반 밖에 필요 없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때 든 생각은 건보재정이 새서 큰일 났다는 게 아니라, 칼(제도)로 의료를 통제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상당수 공급자 단체는 이미 복지부의 뜻을 간파한 상태이다.
이태한 실장이 의사협회를 시작으로 한의협, 치협, 약사회, 병협, 간협 등을 잇 따라 방문해 임원진과 간담회를 개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보험료를 인상해 건보 파이를 크게 하자는 게 반대할 단체는 없다.
문제는 의료계와 복지부의 신뢰 구축이다.
복지부도 인정한 의료기관을 도둑으로 내모는 건보법 등 규제 중심의 독소조항을 개선하는 실천이 뒤따라야, 의사들도 복지부를 믿고 국민 설득에 동참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태한 실장은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복지부의 일부 권한을 의약단체에 위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보장성과 고령화라는 물결 속에 건강보험 파이를 확대해야 한다는 복지부의 위기감이 향후 의료정책 방향의 대전제로 대두되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