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가 규제 중심 의료정책의 한계를 인정하며 건강보험 재원 확대를 공론화해 주목된다.
보건복지부 이태한 보건의료정책실장은 30일 서울 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보건소장협의회 창립식 기념 세미나에서 '보건의료정책과 보건소 역할'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이태한 실장은 "복지부가 그동안 잘못한 보건의료 정책을 통렬하게 말하고 싶다"고 운을 띄우고 "의료계와 정부가 국민을 설득해 보건의료 투자를 확대하지 못하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우선 "복지부는 보건의료 5개년 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한 번도 만든 적이 없다"면서 "의료인와 약사가 바라볼 지표가 안돼 있어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자성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그럭저럭 버텨왔으나, 고령화라는 핵폭탄이 다가오고 있다"며 "현 건강보험과 의료체계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환기시켰다.
이태한 실장은 "복지부에 4대 중증질환과 3대 비급여 해소라는 소명의식이 주어졌다"면서 "하지만 정치인은 보험료를 올리지 말고 하라고 한다"며 의료정책 실무책임자로서의 고충을 토로했다.
이 실장은 "보장성의 압력은 늘어나고, 수가 지원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전하고 "의료계에서 마른 수건을 짠다고 표현하고 있다. 건보재정을 억제하는 현 구조는 '제로섬' 게임"이라며 저수가 일변도 정책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이태한 실장은 "정해진 재정에서 의약단체별 나눠먹기 식이 되다보니, 단체에서 강성 회장이 나오고, 강한 투쟁과 강한 반대, 강한 저항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해법으로 의료계의 국민 신뢰에 기반한 보험료 인상 등 건보재정 확대를 제안했다.
이 실장은 "공급자단체와 정부가 힘을 합쳐 국민을 설득하고, 보건의료에 투자하는 게 국민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태한 실장은 "의사 선생님이 아닌 돈 버는 사람으로, 약사는 돈 받고 약 파는 사람으로 국민에게 인식되어서는 안된다"며 "건보법을 강화해 과잉진료를 억제한다고 해결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적 투자 확대 없이 의료 억제정책을 지속한다면 5년 후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실장은 일례로, "정부가 건보 제도를 못하겠다고 뒤로 자빠지거나, 연봉 7천만원인 의사의 공무원화 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건보재정 파탄 또는 총액계약제로 정책기조가 바뀔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태한 실장은 "복지부부터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자성하고 "보험제도에서 의료기관을 도둑놈으로 보는 독소조항과 고시라는 잣대로 의료인의 자긍심을 없애는 내용을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실장은 "우선, 건보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심평원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진행하고 있다"며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저출산과 고령화 시대에서 위축되고, 제대로 하면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태한 실장은 끝으로 "의료인과 환자, 공무원 모두 국민"이라면서 "복지부가 모든 이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면 잘못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며 의료계의 협조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