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급여기준을 초과한 원외처방전을 발급했다고 하더라도
의사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행정편의적이며, 약사와 환자도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20부(재판장 장석조)는 최근 순천향대병원과 공단간 원외처방약제비 사건 항소심에 대해 이같이 판결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순천향대병원이 2001년 11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전을 발급해 12억 1603억원(공단부담금 9억 4388만원, 환자부담금 2억 215만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진료비에서 상계처리했다.
이에 대해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11월 12억여원 중 환자본인부담금에 대해서는 병원에 돌려주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반면 서울고법은 환자부담금 뿐만 아니라
공단부담금 9억여원까지 반환하라고 주문했다.
우선 서울고법은 "병원이 비록 환자에 대해 최선의 진료의무를 다하기 위해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처방을 했다고 하더라도 위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의료기관이 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을 하고, 약국이 그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 교부한 뒤 공단으로부터 약제비를 받았다면 결과적으로
약국이 약제비 상당의 요양급여비용 이득을 취득한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이어 재판부는 "약국이 처방전에 따라 환자에게 약국 교부했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환자에 대해서는 유익한 진료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다시 말해 환자가 공단이 지급한 약제비 상당액을 부당이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단은 의료기관이 아닌
약국에 대해 민법상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게 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은 "공단이 약국에 대해 민법상 부당이득반환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병원의 원외처방전 발급행위만으로 바로 공단에게 그로 인한 현실적 손해가 발생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의사가 한 처방전 발급의 절차적 위법을 별론으로 한다면 환자에 대한 관계에서 위법한 진료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이 경우 처방전에 따라 조제된 약을 공급받아 혜택을 본
환자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게 타당하다"고 못 박았다.
법원은 "이렇게 하면 건강보험체계에서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우려가 없지 않지만 공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지 않음에도 공단측에서 입법 또는 제도 운영상의 오류를 범해 빚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법원은 순천향대병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시키는 것은 행정편의적 해결방법으로서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병원의 위법한 원외처방전 발급으로 인한 비용은 급여를 수령한
약사, 환자가 순차적으로 부담하도록 하고, 사후에 병원과 환자 사이에서 위법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다시 말해 공단이 약국에 대해 가지는 부당이득반환채권이 9억여원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아닌 약국에 지급할 약제비에서 상계하라는 것이다.
법원은 병원의 원외처방전 발급으로 공단에게 발생한 손해를 모두 병원에게 떠넘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병원의 손해배상책임비율을 50%로 제한하는 게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법원은 "공단은 병원의 위법행위에 따라 약국이 받은 약제비를 부당이득반환채권으로 공제하면 비록 그 금액이 9억여원에 다소 미달하더라도 병원에 대해 상계로 대항하고자 하는 손해배상채권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법원은 공단이 순천향대병원에 지급할 진료비에서 상계처리한 9억여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순천향대병원에 9억여원을 우선 돌려준 후 약국과 환자에게 순차적으로 부담하도록 하는 등의 방법을 선택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병원의 책임을 50%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지난 3월 원외처방약제비사건에 대해 확정판결한 이후 하급심은 병원의 손해배상책임을 20~50%(환자본인부담금 제외)로 제한해 왔다.
하지만 요양급여기준을 벗어난 원외처방전에 대한 책임을 약국과 환자도 분담해야 한다는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