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정부가 추진하면 다 도입되지 않았나. 반대만 하지말고 얻을 게 뭔지 찾아봐야한다." "도입되면 개원가가 다 죽는데 무슨 소리냐."
흔한 식사 자리의 풍경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열기가 대단했다. 주장에 이어 곧 반박이 나왔다. '원격진료'가 식탁 위에 이슈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최근 재활의학과개원의사회의 총회 자리에서는
단연 원격진료가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회무 보고 시간을 통해 잠깐 언급된 원격진료 추진 경과가 총회를 마친 후 식사 자리까지 불꽃이 이어진 까닭이다.
원격진료 추진 과정을 잘 몰랐다는 한 임원진의 고해성사부터 시작해 막아봐야 소용 없다는 일부 회원들의 자조섞인 푸념까지 열댓명이 모인 식사 자리는 흡사 토론방을 방불케했다.
원격진료와 동떨어져 있을 것만 같은 재활의학과 의사들이 느끼는 진솔한 생각은 무엇일까. 전영순 회장을 만나 생각을 물었다.
전 회장은 원격진료와 별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재활의학과에서도
조금씩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사실 재활의학과는 처방전이 나갈 일이 별로 없어 원격진료를 그저 타과의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정부의 원격진료 추진안에 정신병 환자까지 포함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재진이나 일부 3차 병원까지 포함된 것을 보고
도대체 어디까지 확대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면서 "정부가 안을 구체화시킬 때마다 내용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원격진료 과정에서의 오진이나 기계 오작동의 책임 소재와 보상에 대한 언급이 없을 뿐더러 그저
의사의 의무사항만 이야기하고 있는 점도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
전 회장은 "원격진료 장비의 설치, 운용 비용과 진료비는 어떻게 하는지 구체적인 안도 없다"면서 "더욱 문제는 제도가 시진과 청진 등 대면 진료를 기본으로 한 의사 교육 양성 시스템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그는 "지금까지 의사의 희생으로 이 땅의 보건의료 제도가 발전해 왔다"면서 "또 한번
재정 절감의 목적으로 원격진료를 도입해 의사의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회 임원으로서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노력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현실적 한계도 인정했다.
그는 "의협 비대위를 통해 파업이나 휴진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만일 파업을 했을 때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면 다음에 할 수 있는 것이 남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는 "의사회 회장으로서는 비대위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만 일선 개원의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집행부와 크게 다른 것 같다"면서 "이 때문에 의사회가 어디까지 결정하고 어디까지 따라오라고 할지 아직도 미지수"라고 전했다
처방전을 쓸 일이 없는 많은 회원들은 여전히 원격진료를 그저 타과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커 일치된 목소리를 만드는 것부터가 힘에 부친다는 말이다.
전 회장은 "비대위가 파업을 하자고 하면 무작정 따르는 것보다 회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판단해야 한다"면서 "
회원들에게 어떤 정치적 구호를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한다고 해도 따라오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원가가 태업을 한다고 해도 큰 영향이 없지만
전공의들이나 병원노조가 함께 참여하면 파급력이 커진다"면서 "대기업과 대형병원은 원격진료를 찬성하지만 보건노조는 반대 노선이기 때문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