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와 '예술'.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가지를 버무린 전시회가 열렸다.
메디컬아티스트 박지은 작가의 'Dr. Lucy(Lucy in the sky Diamonds)'.
그의 작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의료의 일부를 미술과 접목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의료계에선 다소 생소한 메디컬아티스트. 하지만 미술계에선 당당히 한 분야로 인정받으며 꾸준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11월 22일부터 12월 5일까지 열린 이번 전시회를 찾아 박지은 작가를 만나봤다.
전시회장에는 인간의 성대를 내시경으로 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표현한 작품이 빼곡하게 걸렸다.
아마도 이비인후과 의사가 봤다면 단순히 성대결절 혹은 성대폴립 환자의 상태를 그려둔 것이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전혀 다른 데 있다.
"성대결절 환자의 성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행복'에 대해서 였어요."
이번 작품의 모티브는 비틀즈의 'Lucy in the sky Diamonds'를 부르고 있는 여가수의 성대를 촬영한 6채널 영상물에서 시작됐다.
가수는 너무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사실 이 가수는 좋은 노래를 위해 무수히 많은 훈련을 거쳤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성대결절 혹은 성대폴립이 발생했을 것이다.
박 작가는 이 과정을 "사람들은 노래에만 집중하지만 좋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상처나는 성대에 대해선 관심이 없죠. 저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원인을 추적해 가는 작업이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는 과정과 닮은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음색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사실 그 행복 즉, 노랫소리는 바람에 흩어지는 찰라와 같은 것일 뿐 성대에 난 상처가 그 실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이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몽환적 느낌이 가득하다.
사실 그가 본격적으로 메디컬아티스트로 활동한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지난 1998년 의료장비나 약병을 압박붕대로 감아 올린 작품 전시회를 시작으로, 2007년에는
'Dr. 과잉&결핍 클리닉'이라는 설치 및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가 처음 의료에 관심을 가진 것은 미대 시절부터다. 우연히 의과대학에 다니는 오빠의 해부학 서적을 보면서 그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것.
게다가 약병, 알약, 수술장비 등을 보며 '이토록 분명한 목적성을 가진 물건이 시각적으로도 시선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됐다.
"사실 '병원은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메디컬 드라마가 주목을 받는 것도 수술복이나 수술장면 등 시각적인 매력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는 의학과 예술은 사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많이 닮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메디컬아티스트가 바라본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의사는 환자의 질병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 환자가 왜 질병이 발생했는지 등 그들의 스토리에도 관심을 가져줄 수 있는 의사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건 이비인후과 의사인 제 남편을 보면서 늘 느끼지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