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과 진료를 받고나온 40대 남자가 있다.
직원은 "검사를 받으셨으니 검사비를 내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남자는 발끈했다. "안과에서 의사선생님만 뵙고 검사는 안했는데 무슨 검사비를 내는가?"
직원은 "의사선생님이 진료할 때 선생님 눈을 현미경으로 살펴보셨죠?"라고 묻자 남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에 직원은 "의사선생님이 현미경으로 살펴보신 행위가 '안저검사'고 검사를 했으니 검사비를 내야 합니다"라고 다시 말했다.
이 남자는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박했다. "안과에서 진료를 하면 당연히 눈을 보는데 이게 무슨 검사고, 무슨 검사비를 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돈을 내야 하는 근거를 묻는 환자의 질문에 병원 직원은 "전부터 그렇게 처리했다"라는 막연한 대답을 했다. 근거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면 진료비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환자와 병원직원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병원에서 환자들의 민원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곳이 바로 '원무과'다.
원무과는 환자의 입퇴원과 진료비 등을 관리하는 행정업무를 도맡고 있는 부서다.
환자가 의사를 붙들고 진료비에 대해 무슨말이라도 할라치면 "원무과와 이야기 하세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쏟아지는 환자들의 "왜?"라는 질문에 원무과 직원들은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환자 민원에 답 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근거'가 있는 답을 만들기 위해 적게는 수년, 많게는 수십년 의료현장 근무 경험을 가진 5명의 남자가 뭉쳐서 책을 냈다.
'근거중심 원무실무(대한병원협회, 32,000원)'라는 책이 그 주인공이다.
5명의 저자는 대학병원법무담당자협의회 강요한 고문(중앙대병원), 본플러스병원 김정욱 원무과장, 강북삼성병원 이항영 법무과장, 삼성창원병원 조용안 원무계장, 아주대병원 정석관 원무계장 등이다.
이항영 과장은 "10년이상 병원에 근무하면서 민원인을 상대하다보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해결 과정에서 답은 하지만 그 근거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답을 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그래야 환자 입장에서도 궁금증을 해소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석관 계장도 "궁금은 하고, 일은 하는데 뭘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김정욱 과장은 "대형병원보다 중소병원, 의원 실무자들에게 특히 많이 도움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책은 원무실무, 원무관련 법무실무로 나눠져 있다. 구체적으로 재원환자관리, 진료비, 비급여, 비의료인에게 적용되는 의료법 규정, 민사소송, 진단서, 진료기록 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강요한 고문은 "부실채권(병원비를 못 받는)이 가장 많이 늘어나는 이유는 장기재원 등 입원환자 때문이다. 입원환자를 관리하면 줄어들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무과 직원들이 환자들의 민원을 못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진료비를 정액으로 고정시켜서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어 "비급여에 대한 법이 어떻게 돼 있는지 설명하고, 의료분쟁 등으로 민사소송이 진행될 때 변호사에게만 무조건 맡기기 보다는 최소한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정도는 감시할 수 있도록 관련 법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책을 내기까지에는 병협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
병협은 책 발간 후 19일부터 '근거중심 원무실무' 연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대병원에서 열린 행사 첫날에만 실무 관계자 140여명이 참석했다.
병협 학술교육국 이숙자 국장은 "병원 실무자들이 책에 있는 근거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 병원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