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갑이라고? 천만의 말씀."
나는 다국적 제약사 10년차 영업사원이다. 목표 달성률이 100이라면 언제나 이를 상회하는 우등생이기도 하다. 당연히 인센티브도 많았고 동료들의 부러움은 당연지사였다.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품목제휴 바람 때문이다. 갑자기 회사에서 파트너사(국내제약)와 거래처를 나누란다. 그 중에는 내 총 매출액의 30%를 상회하는 A병원도 포함됐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 당장 쫓아가서 물었다.
"거래처 없어졌으니 실적 목표는 당연히 낮아지겠죠?"
돌아오는 답변이 어이없다. 그대로란다. 어떻게 보면 내 거래처를 떼간 국내사 영업사원만 봉 잡은 거다.
남들은 말한다. 공동 판매시 제품을 가진 다국적제약은 '갑'이라고. 국내사를 수하 부리듯 하면 되지 않느냐고.
어느정도는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도 힘들고 고달프다. 공들여 겨우 키워논 거래처를 뺏기기 때문이다. 입장 바꿔보면 이해할 것이다.
실적 나누기도 고역이다. 혼자 할 때는 간단했다. 예를 들어 A병원이 내 거래처라면 A병원에서 나오는 매출은 다 내 몫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리 회사의 경우 그냥 5대 5로 나눈다. 누가 잘하고 열심히 하는지를 알 길이 없다. 괜히 뭔가 뺏긴 기분이다.
의료진에게도 없던 핀잔을 듣는다. 왜 같은 약을 들고 두 회사가 디테일을 오느냐고 말이다.
한 의료진은 환자들에게 정장 입은 사람들이 제약사 직원이냐는 질문까지 받았다고 한다. 괜한 오해를 받기 싫으니 올꺼면 한 명만 오라고 했다. 할 말이 없다.
이 모든 일이 잇딴 품목제휴 바람이 불고 난 후 생겨난 현상이다.
품목 제휴 홍수 속 "난 오늘도 외자약 팔러 길을 나선다"가 국내 영맨의 비애란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루 아침에 거래처 뺏긴채 실적 압박 내몰린 외자 영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