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가을, 국회라는 곳이 구경거리에서 일터로 바뀐 것에 미처 적응도 못해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던 시절이었다. 때마침 국정감사(국감)의 시작이 초읽기에 들어갔었고, 필자는 그 영문도 모른 채 점점 초췌해지는 보좌진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며 괴롭히고 있었다. 결국 국감은 다가왔고 뒤늦게 업무를 파악하여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정림 의원께서 갑자기 부르셨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에 대해 공부하라는 지시였다. 특히나 그 해 초에 있었던 문제 유출 사건의 접근을 말씀하셨다. 그 때는 그만큼 중(重)한 업무를 왜 생초보에게 맡기시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사건 자체의 법리적 성격보다는 색다른 관점의 사건 해석을 기대하셨던 것 같다.
부랴부랴 기관 파악부터 시작하여 국시원 연구를 하고 나니 금세 국시원에서 업무 보고를 위해 의원실에 찾아왔다. 어색한 명함 교환에 이어 보좌관님과 함께 업무 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꽤나 시간이 지났고 많은 질문도 오갔지만 정작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바쁜 일정에 보좌관님께선 자리를 비우셨고 홀로 남아 당황하던 중 갑작스레 질문이 떠올랐다. "국고 지원율이 얼마나 됩니까?"
그 때부터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출제센터도 없을뿐더러 실기시험 기간이면 사무실을 개조해 만드는 임시방편 실기시험장, 100만원에 육박하는 응시수수료 등 많은 문제들이 하나의 큰 문제로 귀결됐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나니 다시 급 걱정이 생겼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건 아닐까, 주제넘은 접근은 아니었을까. 의원님께서 오실 때 까지 손톱만 뜯다가 보고를 드리러 갔다. 의원님, 죄송하지만 말씀하신 내용과는 조금 다른 주제를 잡았습니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보고를 마친 뒤, 우려했던 질타 만큼의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언제나 의원님께서 말씀하시던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것이었다. 의원님께서는 더욱 날카로운 질문들을 몇 가지 제시하셨고 곧장 질의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도 의원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포인트를 짚으시며 확인해보라고 말씀해 주셨고 보도 자료도 의원님의 수 없이 많은 검토와 개정이 지난 뒤에야 완성이 되었다.
국회 내부에서는 이와 같은 주제 1개를 '한 꼭지'라고 칭한다. 국감 동안 꼭지 개수의 제한은 없으나 꼭 질의를 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어 의원 당 꼭지 개수는 다양하다. 어렴풋이 기억해보면 2012년 당시 의원님의 질의 꼭지 개수는 50개에 달했다. 그 각각의 경중은 다르겠지만 꼭지 1개도 쉽게 통과된 적이 없었다. 검토, 재검토, 개정이 잇달았고 이에 보좌진들은 밤낮이 없어졌었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의원님께서도 그 새벽까지 공부하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국시원 국감 당일, 다른 기관들과 함께 감사를 받은 탓인지 혹은 애초에 화젯거리도 없었던 탓인지 질의도 거의 없었다. 그나마 기억나는 질의는 문제 유출 사건의 학생들을 처벌하라는 것 정도였다.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의원님의 순서가 찾아왔고, 의원님께서는 관련 내용을 전부 파악하신 만큼 완벽하게 질의를 이어 나가셨다.
질의가 끝난 뒤, 많은 언론 보도를 보며 속으로 뿌듯해 하고 있던 참에 의원님께서는 곧 있을 예산 심의에 쓸 자료와 또 후속 조치로 법안 발의까지 하실 예정이니 법안 작성을 명하셨다. 막중한 책임감이었지만 더 신나서 일을 할 수 있었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의원님의 지대한 관심이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2013년 1월, 그렇게 해서 국시원법은 발의될 수 있었다.
국회에서의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였던 탓인지, 종종 법안 처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을 해보곤 했다. 그런데 정작 법안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심사를 받아보지도 못하고 계류 중이다. 기초연금법 관련하여 여·야가 장기 대치중이어서 그렇다는 추측도 있지만 어찌됐든 아쉬운 사실이다. 학생들의 관심과 응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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