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오랜만이에요. 분위기 많이 달라졌다."
"그래? 많이 늙어서 그런가. 5년 만이지?"
지난 불타는 금요일 밤, 스무 살 즈음 교환 학생으로 방문한 싱가포르에서 친분을 쌓았던 오빠를 5년 만에 만나기로 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간간히 연락하곤 했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은 꽤 오랜만이라 며칠 전부터 두근거렸다. 서로 사는 게 바빠 몇 번의 조율 끝에 간신히 날짜와 시간을 정했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만나기 십분 전부터 휴대전화 전원까지 간당거린다.
만남의 두근거림에 더불어 혹시라도 연락이 안 되어 만나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보자마자 서로를 알아보았다. 스무 살 내기들의 풋풋했던 청바지가 깔끔한 정장으로 바뀌어버린 서로의 모습에 웃기만 하다가 오빠가 한턱 쏜다며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았다. 나는 정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하였다.
"가브리살이요."
가브리살은 돼지의 목살과 등심이 연결되는 단 지갑만 한 크기의 부위로 한 마리당 120g~ 150g 밖에 나오지 않는 특수부위이다. 내가 가브리살을 처음 먹은 것은 대학교 동아리 회식자리였다. 클래식하게, 고기는 양념이 되지 않은 고소한 삼겹살! 을 고집했던 나였기에 가브리살과의 첫 만남은 낯섦 그 자체였다. 지방 하나 없는 빨간 육질이 고소함 없이 질길 것만 같아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는데, 먹어보니 오히려 삼겹살보다 연하고 부드럽기까지 했다. 찾아보니 지방이 없는 게 아니라 연한 우윳빛을 띄고 있을 뿐, 기름기가 많은 항정살과 맛이 비슷하단다. 그 맛에 반해 한참 고기를 구워먹은 후부터 간간히 기름진 고기가 먹고 싶을 때는 가브리살을 찾곤 했다. 물론 영원한 내 마음 속 등은 삼겹살이지만, 요즘 같이 속이 허한 날엔 유독 가브리살이 당기곤 한다.
아직 초여름이라 제법 쌀쌀한 저녁 공기를 가르며 걸어간 근처 왕십리역 고기 집에서 가브리살 이 인분과 삼겹살 일 일분을 시키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학가의 고기 집임이 무색하게 깔끔한 밑반찬과 두툼한 고기가 숯불 위에 올랐다. 치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따뜻한 불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의 모양이 즐거워 우리 둘은 슬슬 신이 났다. 마늘과 김치까지 불판에 올려놓고 싱가포르식이 아닌 한국식으로 구워지는 모습을 보며 양국의 근황부터 사회, 결혼까지 끊임없이 이야기 하다 보니 고기가 노릇하게 익었고, 그 후로 우리는 말 그대로 이성을 잃고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사실 의학 공부를 하다보면 제대로 밥을 먹기가 힘들다. 질도 물론이거니와 매 끼를 챙겨먹는 것조차도 힘들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식사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채 한 끼에 한 시간이 안 되는 일도 허다하다. 이번처럼 고기를 먹을 때도 제일 센 불에 후다닥 구워먹고, 조금이라도 빨리 먹으려고 고기를 시킬 때 밥도 함께 시켜 먹으며, 아침에는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 사서 걸어가면서 먹는다. 하루가 아니라 한 달이 넘게 이렇게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꽤 많은 학우들이 속앓이를 앓고 있다. 나 역시 요즘엔 편의점 김밥과 우유만 먹다보니 자꾸 메슥거려 밥과 고기를 몸이 느꼈나보다. 의식주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만족시키기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내가 단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자그만 행복이 굉장히 좋다.
즐거웠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피곤함에 절어 뻗어 버렸다. 침대로 기어들어가 누우면서 내일은 토요일이니 그래도 좀 잘 수 있겠다는 행복감에 오늘의 만남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다 고기를 먹느라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내 모습이 웃겨 웃어버렸다. 잠에 들면서 오빠에게는 미안하지만 누구와 같이 고기를 먹었다는 경험 자체가 재미있고 행복한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음은 또 언제 무엇을 먹을 지,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