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을 얻기는 쉽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실천하기는 어렵다. 특히 의약품이라면 더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의료진이 알약이 크다고 피드백을 준다. '반으로 쪼갤 수 있는 금을 넣어달라' 같은 의견을 낸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는 회사는 드물다. 제형이 바뀌면 식약처에 보고를 다시 해야하는 등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 범위를 좁혀 이런 피드백을 글로벌 제약사 한국 법인이 받았다고 치자. 한국서 받은 피드백을 본사에 전달하고 의견을 받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결국 '없던 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한국만 피드백을 적용하기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사노피는 인슐린 주사에 밥그릇 그림 아이콘을 넣었다.
전세계 110여 개국에 진출해 있는 사노피 그룹 내에서 한국에서 유일하게 말이다. 의료진 등의 피드백을 과감히 받아들여 나온 결과물이다.
"사노피는 어떻게 인슐린 주사에 밥그릇을 넣었을까"
해당 제품은 사노피 초속효성 인슐린 유사체 '애피드라®주 솔로스타® 100IU/ml(인슐린 글루리신)'다. 지난 6월부터 밥그릇 라벨을 선보이고 있다.
사노피는 밥그릇 탄생을 위해 전국 당뇨병 전문의, 당뇨병 전문 간호사, 당뇨병 환자 149명을 대상으로 라벨 변경 사전 선호도 조사를 시행했다. 전체 응답자 중 70%(105명)이 새 라벨을 선호했다. 그리고 과감히 적용했다.
라벨에는 가시성이 높은 붉은 색을 활용해 '밥그릇' 그림 아이콘이 삽입됐다. 이는 식전 15분 이내 혹은 식사 직후 투여하는 '애피드라®주' 투여 시기를 상징한다.
과거 의약품 박스 패키지에 그림을 사용한 사례는 있었으나 라벨에 이미지를 도입한 경우는 '애피드라®주'가 최초다.
더 나아가 전세계 110여 개국에 진출해 있는 사노피 그룹 내에서도 유일하게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일이다.
사노피 관계자는 "라벨 변경은 솔로스타®와 사노피의 또 다른 인슐린 제품 란투스®주와의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해 기획됐다. 하루에 두 가지 이상의 인슐린 주사를 맞는 당뇨병 환자들의 투약 오류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국내 최초로 시도된 애피드라®주 라벨 그림 아이콘 도입은 의료진과 환자 등의 작은 요구에도 귀 기울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사노피의 노력"이라고 의미를 뒀다.
"환자분, 식사 후 밥그릇 맞으시면 됩니다"
일단 현장 반응은 좋다. 밥그릇 라벨이 당뇨병 환자들의 인슐린 주사 투약 오류성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여의도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권혁상 교수(대한당뇨병학회 홍보이사)도 같은 의견을 표명했다.
권 교수는 메디칼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외래를 볼 때 환자들에게 인슐린 주사 모형을 보여주고 인슐린 종류 등을 설명하지만 잘 이해하는 환자는 드물다. 자신이 어떤 제품을 맞는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제품 이름보다 아침에는 보라색, 식후에는 빨간색 주사를 맞으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평소 뭔가 확실히 차별화되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기저+식사 인슐린 환자에 밥그릇 라벨 투약 오류성 줄일 것"
밥 그릇 아이콘이 기저 인슐린과 식사 인슐린을 같이 맞는 환자(basal-bolus 요법)에게 투약 오류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기저+식사 인슐린 요법 환자 중 26%에서 펜 유형을 헷갈린 경험이 있다. 이 수치는 60대 이상에서 3배 이상으로 껑충 뛴다.
권 교수는 "식사량 등이 일정치 않은 환자에게는 기저 인슐린과 식사 인슐린 비율이 고정적으로 혼합된 프리믹스 요법은 한계가 있다. 때문에 처음 인슐린 주사를 접할 때는 대부분 기저 인슐린과 식사 인슐린을 따로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경우 아무리 펜 색깔과 길이가 달라도 환자가 헷갈릴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밥그릇 아이콘 삽입은 두 개 이상의 인슐린 주사를 쓰는 환자에게 투약 오류성을 줄일 수 있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