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회들이 국제화를 목표로 대부분 학술지를 전면 영문화하면서 한글로 작성된 논문은 갈 곳을 잃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한글로 쓰여진 논문들이 국내 학술지에도 실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이를 보완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A대학병원 임상 교수는 18일 "대부분 학회지가 전부 영문으로 바뀌고 나니 논문을 게재할 곳이 없어져 버렸다"며 "굳이 영문으로 작성할 필요까지 없는 가벼운 연구들은 의대 내에서만 공유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최근 의학회들은 국제화라는 명목으로 학회지를 모두 영문으로 전환하고 있다. SCI 등재를 목표로 하는 국제화 전략이다.
우수한 논문들이 SCI 저널로만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학회지 자체를 SCI에 등재하는 방법을 택한 셈이다.
이는 리베이트 쌍벌제와 공정경쟁규약의 시행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내 학회보다는 국제 학회가 제약사 후원을 받는데 수월한 이유다.
이에 따라 대부분 학회들은 이미 춘·추계 학술대회를 모두 국제 학회로 전환하는 추세다. 또한 그에 맞추다 보니 학회지 또한 한글로 발간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국내 학자들이 작성한 많은 논문들이 국내 학술지에도 실리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의학회들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내 의학자들간에 정보 공유를 위해 만든 학회와 학술지에 우리나라 학자들의 논문이 실리지 못하는 사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B학회 이사장은 "학회 원로들을 중심으로 왜 유용한 논문을 받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우리끼리 연구를 공유하자고 뜻을 모아 학회를 만들었는데 국제화를 쫓느라 이를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라고 털어놨다.
또한 SCI급 저널이 아닌 국내 학술지에 투고를 활성화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이 오히려 논문수를 줄이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골치거리다.
굳이 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 영문으로 논문을 작성하는 교수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 학회들은 논문을 영문으로 전환하는 서비스를 내놓으며 보완책을 내고 있다. 학회가 계약한 번역가를 통해 국문 논문을 영문으로 바꿔주는 시스템이다.
아울러 학술대회나 연수강좌에 영문 논문 작성법을 별도의 세션으로 만들어 교육에 나서며 회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차라리 국문 학술지를 유지한 채 영문판을 별도로 만드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며 "뾰족한 방법이 나오면 좋겠는데 방안의 장단점이 공존하니 고민이 이만저만하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