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찰이 모 이비인후과 의원의 압수수색 중 수술을 중단시켜 '수술방 습격사건'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다른 병의원에서도 경찰의 무리한 수사 방식이 확인되고 있어 논란이 일 조짐이다.
경찰이 사기가 의심되는 건에 대해 형사소송법을 운운하며 임의로 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어 의료법상 환자의 보호 우선 책임보다 행정 편의를 우선시 했다는 비판이다.
1일 의료소송 전문 법무법인과 병의원에 문의한 결과 최근 벌어진 '수술방 습격사건'과 같은 경찰의 무리한 수사 관행이 수 차례 확인되고 있다.
한달 전 광진구의 A병원은 경찰로부터 협조공문 한 장을 받았다. 내용은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사례가 있으니 해당 환자의 진료기록부를 넘겨달라는 것이었다.
진료기록부 제출의 근거로 든 것은 형사소송법 제218조. 영장에 의하지 않은 압수를 규정한 해당 조항은 "검사,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기타인의 유류한 물건이나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을 영장없이 압수할 수 있다"고 명시해 놨다.
의료법 제21조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는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형사소송법 제218조 등 몇가지 조항은 예외 규정으로 정해놨다.
문제는 경찰이 진료기록부 요청의 근거로 삼은 조항이 자료 제출 요구권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감우 법률사무소 김계환 변호사는 "경찰이 보험사기 의심 사례에 대해 병의원을 상대로 무리하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관행이 줄곧 있어왔다"면서 "환자의 진료기록 제출을 요구받은 병의원 중 일부가 상담을 요청해 온 적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임의 압수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18조는 의료기관 담당자가 경찰에게 임의로 무언가를 제출했을 때 그걸 압수해서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이지 제출 요구권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면서 "환자 동의없는 자료는 병의원이 제출할 의무가 없지만 이런 부분은 협조공문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협조공문의 내용을 잘 모르는 병의원 중 일부는 자료들을 정리해 경찰에 넘겨주기도 한다"면서 "나중에 환자가 이 부분을 문제삼거나 혹은 환자가 보험 사기로 판명될 경우 장기 입원을 방조한 책임을 물어 면허정지, 업무정지 처분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서초구에 위치한 다수의 병의원들이 보험사기 수사와 관련해 경찰로부터 이런 협조공문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A 환자는 뇌출혈 치료를 받으며 보장 외의 치료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보험사 측의 보험사기 혐의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해당 환자가 치료를 받은 곳으로 중심으로 이런 협조 공문을 보내 빈축을 샀다.
게다가 보험사는 A 환자의 아내 B씨 역시 허리디스크로 인한 입원 도중 외부 식사를 했는 이유를 들어 보험사기로 신고했고 경찰은 B씨가 입원했던 병원에도 협조 공문을 보냈다.
의료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서로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한달 전 광진구의 모 병원도 경찰의 협조공문을 받아 상담을 의뢰한 적이 있다"면서 "원장들이 이런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진료기록부를 넘기는 사례가 종종 있지만 추후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압수수색을 하려면 최소한의 범죄 소명을 해야 하지만 입증이 힘들기 때문에 찔러보기 식으로 이런 공문을 보내는 것이다"면서 "이비인후과의 수술방 습격 사건과 마찬가지로 행정편의주의를 앞세우고 진료권과 환자의 개인정보보호 책임을 도외시하는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