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은 가이드의 꼼꼼한 설명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성가족 성당 구경이 끝났다. 수난의 파사드 근처에서는 비계가 놓여있고, 이날도 가우디의 후예들이 그의 유지를 이어 성당을 짓고 있는 모습이 반갑다. 다음 코스는 구엘공원이다. 성가족성당에서 구엘공원으로 가는 길에 역시 가우디의 작품인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가 있는 그라시아 거리를 지난다.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쇼핑거리인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는 한 블록 정도 떨어져 비켜서서 마주 보는 형국이다. 일정이 빠듯해서 직접 방문할 수는 없다고 했는데, 카사 바트요 앞에서 버스가 신호에 걸려 대기하는 행운을 얻었다. 덕분에 외관은 문론 집안을 돌아보는 관광객들까지 가늠할 수 있었다.
거리에 서 있는 다른 건물들은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 박스를 포개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카사 바트요에서는 직선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동화 속에 나오는 요술궁전같은 카사 바트요를 김희곤 교수는 '카탈루냐의 용이 품고 있는 작은 지중해의 용궁'이라고 표현했다. 7층 높이의 건물 앞면에 있는 난간과 기둥은 마치 용이 잡아먹은 희생물의 잔해로 만든 것처럼 해골과 뼈 모양을 볼 수 있다.
2층 중심 발코니 창문을 통해 그라시아 거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숲속에 앉아서 파도가 부서지는 지중해변을 바라보고 있는 착각에 빠져든다. 건축 공간의, 그 느낌을 맛볼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카탈루냐의 영산 몬세라트의 바위산에서 영감을 얻어 지었다는 카사 밀라는 물결치는 파동의 석조 입면이 아름답다고 했는데, 그 마저도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쳐놓은 공사용 천막으로 가려있었다.
구엘공원은 1898년 미․서 전쟁의 패배로 스페인의 대외무역이 차단되면서 세계대국의 날개를 접고 좌절의 수렁에 빠질 무렵에 주택단지 조성에 투자하기로 한 구엘의 사업구상에 따라 시작됐다. 구엘은 몬타냐 벨라다에 있는 농장을 사들여 최고급 주택단지를 지어 신흥 재벌에게 분양할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가우디가 현장을 돌아보았을 때 해발 200여 미터에 달하는 산등성이의 굴곡이 너무 심해 집을 짓기에 어려운 지형이었지만, 가우디는 축대를 쌓고 산을 절개하는 대신 자연을 살리기로 했다. 김희곤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선 등고선을 따라 산허리에 오솔길을 뚫었다. 움푹 들어간 곳은 메우지 않고 그 위에 다리를 놓거나 건물을 세워 옥상을 평평한 마당으로 편입했다. 기복이 심하고 바위와 동굴이 많은 지형을 살려내기 위해 아치구조를 개발했다. (…) 각각의 레벨에 따라 길을 내고 대지를 구획정리한 가우디는 소나무를 비롯한 각종 수목과 자생식물을 심어 원래의 숲을 복구했다. 그 다음 대지의 중심 계곡에 도리스식 신전으로 묘사되는 실내 시장을 만들었다."
공원의 입구에 서자 계단 위에 올라앉은 기둥들이 마치 신전처럼 보인다. 계단 가운데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느라고 부산하다. 아내와 함께 올라가보니 카탈루냐 문장이 새겨진 원반장식 가운데 뱀머리가 튀어나와있고, 입으로는 물을 뿜고 있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남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먼저 자리를 차지하느라 은근 몸싸움이다. 어찌어찌 해서 자리를 만들고 아내의 사진을 찍어줬다.
그 위에 있는 델피 신전의 옴파로스에 있는 지하수의 수호신을 의미하는 도마뱀 형상의 퓨톤에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사진을 찍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밑에서 볼 때 신전처럼 보였던 구조물이 86개의 기둥을 세운 아고라이다. 기둥들은 화반 위로 구름 모양의 천정을 받치고 있는데, 오목오목하게 생긴 천정은 깨진 타일로 덮여있고, 중앙에는 동그란 뱃지처럼 생긴 예쁜 문양을 담고 있다. 가우디가 구엘공원에 타일을 붙인 기법을 트렌카디스 기법이라고 하는데, 원색의 타일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깨진 조각으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다시 붙이는 기술로 사실성의 해체를 의미한다고 했다.
건축가 최준석은 가우디의 건축과 클림트의 그림에서 공통점을 봤다고 했다. "가우디의 건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자유분방한 타일 조각들은 클림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비잔티움풍의 색채 파편들과 비슷하다. 정교한 금은세공을 막 거친 듯한 비잔티움의 세밀한 조각들이 만들어 낸 한 폭의 모자이크 작품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둘 사이를 이어주는 공통점은 유려한 관능미다. 말하자면 육체의 욕망을 벗어나 정신의 완성으로 다가서려는 궁극의 에로티시즘이다."
최준석이 말하는 유려한 관능미는 지중해를 향한 쪽에 서 있는 아고라의 기둥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기둥처마들이 만들어내는 곡선으로부터 실감할 수 있다. 계단을 돌아 아고라 위쪽으로 펼쳐지는 마당에 들어서면 멀리 지중해가 열려 있고, 마당 끝에는 유선형의 벤치가 이어진다. 벤치에 앉아보면 마치 내 엉덩이를 재서 만든 것처럼 꼭 맞아 그렇게 편할 수 없다. 가우디가 남긴 위대한 건축 작품들을 돌아보느라 뻣뻣해진 다리를 쉬는데 아주 그만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내와 함께 한 필자처럼 쌍쌍이 쉬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늦게 도착한 까닭에 해가 넘어가고 있어 반짝이는 지중해를 배경으로 바르셀로나 시가지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 가이드는 이곳이 분양이 되지 않아 결국은 시에서 인수하여 공원을 만들었다고 설명했지만, 공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구엘이 죽고, 그 아들이 곧바로 구엘공원을 팔아버렸다고도 한다. 만약 구엘에 죽지 않았더라면 이곳에 얼마나 많은 집들이 들어설 수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해가 많이 짧아진 탓인지 구엘공원을 나설 무렵에는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이날 저녁 식사는 바닷가 요트 계류장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스페인 전통음식인 파에야를 먹었다. 우리 입맛을 고려해서 해산물 파에야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날 먹은 파에야는 무쇠 팬에 조리해서 식탁에서 바로 나눠줬기 때문에 따끈해서인지 아내는 만족한다했지만, 감치는 느낌이 없이 밋밋한 느낌이 남아서 였을까? 나는 실망했다.
무쇠 팬에서 조리하는 스페인 전통음식 파에야는 고급음식이라기 보다는 우리네 비빔밥처럼 대중적인 음식이면서도 잔치마당에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 전주에서 열린 학회에서 커다란 통에다 재료를 쏟아넣고 만든 비빔밥을 먹은 기억이 있다. 스페인에서도 파에야는 여러 사람을 위해서 조리하기도 하는데, 1992년 발렌시아에서는 십만명을 위한 파에야를 만들어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식사 중에 아코디언 연주자가 등장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베사메뮤초, 푸니쿨리푸니쿨라 등을 연주했는데 정작 우리 일행은 간간이 박수는 쳤지만 팁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알았으면 아리랑 한곡 정도는 연주하는 센스가 없어서였을까?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리는 스페인 사람들이 정작 관광객을 배려하는 마음이 그리 애면글면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대체로 1차 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스페인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일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관광객들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불편함이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식사를 마치고 차를 기다리는 동안 지중해에 휘영청 빛을 뿌리는 보름달을 구경했다. 잔잔한 바다는 마치 폭풍 전야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튿날 날씨는 화창했다. 보름달이 뜬 이날, 월식이 진행됐다지만, 그때 바르셀로나에서는 볼 수 없었다. 지중해에 달빛을 뿌리는 보름달이 지구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장관을 구경하는 행운까지는 없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