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제39대 회장 당선을 축하합니다. 저는 개원의도 아니고 임상의사도 아닙니다. 그러나 2001년 1월에 의협 법제이사를 맡은 이후에 대의원, 부회장,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중앙윤리위원회 위원 등 의협의 여러 업무에 관여해 본 경험이 있어 감히 회장 당선자(이하 '회장님')에게 제 생각을 전하고자 합니다.
당선을 위해 회장님은 여러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다른 후보와는 조금 다르기도 하고 공통점도 많았습니다. 다른 후보와 마찬가지로 의협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의 시발점을 의약분업으로 보았습니다.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제시했으며 그 가운데에 회장님이 있고, 회장에 당선되면 독특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적어도 그러하도록 앞장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선거라는 절차 때문에 선거 전략으로 그리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회장에 당선했습니다. 호흡을 가라앉히고 심호흡을 하십시오. 가쁘고 얕은 숨을 쉬고 있는 흥분 상태로는 이성적으로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의협이 맞닥뜨린 현상은 드러난 몇 가지뿐이 아니며 그 원인은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경상도 출신의 큰 부자께서 회사를 운영할 때에 이사회에서 하는 말은 딱 세 마디랍니다. "우찌 됐노?", "와 그리 됐노?", "우짤 끼고?" 줄여서 '우-와-우'입니다. 이를 조금 풀어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은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적절한 대처를 한다"입니다.
지난해에 대통합과 혁신을 앞세웠지만 현상과 원인을 무시하고 회원들의 대통합이나 의협의 혁신을 하겠다는 주장은 '도로아미타불'이겠지요?
도대체 우리 의협이 닥친 문제가 무엇입니까? 모두 열거하고 비슷한 것끼리 모으고 가장 중요하고 또는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두 공감하는 일이 필요하지는 않을까요? "나는 이 문제가 심각한데 왜 의협은 저 문제로 떠드냐"는 불만이 회원들에게는 가장 근본인 듯합니다. 어찌되었든 문제는 의사들이 배고픈 것이고 자존심이 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들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의사들의 문제는 의약분업 때문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의약분업으로 비로소 드러난 것 같습니다. 들은 말로는 이렇습니다. "의료는 과학 발전 등과 더불어 20세기 후반에 가장 각광을 받았고 의사의 상대적 지위는 그때 가장 높았다. 차츰 의사 수도 많아지고 일반인들의 의학 지식도 많아지면서 의사의 상대적 지위는 낮아졌다.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다. 다만 의사들은 그에 대한 대처가 늦었다." 변하는 사회, 의료의 기능, 보건의료인의 임무, 의사의 사회적 지위나 책무 등을 살피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시작해야 한답니다.
요컨대 깊은 성찰입니다. 시간도 걸리고 아픈 소리도 많이 들어야 합니다. 일부는 감수해야 하고 일부는 개선해야 합니다. 회장님 3년 임기 안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드러난 현상의 공통 원인은 무엇이고 구체적 원인은 무엇인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대처 전략인 듯합니다. 파업이나 궐기대회, 회의장 박차고 나오기, 회의 무효 선언 등은 좋은 방법이 아닌 듯합니다. 전략이나 협상 능력 없음을 드러낸 것 같아 더욱 싫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 의협은 3년마다, 회장이 바뀔 때마다 기존의 결정은 무효가 되고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전략으로 새롭게 대처합니다. 의협은 그동안 전문가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의약분업 때부터 시작하였다면 적어도 15년 경험의 전문가가 있었을 터인데 말입니다.
눈을 돌려 우리와 협력과 경쟁을 하는 유관 단체를 보면 회장이 바뀌어도 기존 전략이 바뀌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의사가 전문가면 금상첨화겠으나 전문가는 굳이 의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열심히 진료하다가 잠깐 시간을 내서 정책이나 의협 일에 관여하기보다는 아예 이 일에 골몰하는 분이 오래 일을 맡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그런 분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길러야 합니다. 충성심 높고 식견도 있는 의협의 직원들을 전문가로 육성하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아무튼 15년 동안 여러 회장들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셨는데 일부는 성공하였겠지만 회원들은 해결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도 해결하시겠다고 나섰지요? 정말 회장님은 짧은 3년에 해결할 수 있는데 전임 회장들은 그러지 못하였나요?
갓 당선한 회장님께 괜한 소리인가요? 무엇보다도 당선을 축하합니다. 그동안 선거 운동에 애쓰셨으니 우선은 푹 쉬십시오. 그리고 깊고 긴 호흡으로 '우-와-우'를 생각해 주십시오. 앞으로 펼쳐질 회장님의 합리적인 지휘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