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1만 의사들의 대표를 선출하는 의협회장 선거의 종착역이 보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의사 회원들의 무관심이 팽배한 가운데, 우편 투표율은 사상 최저를 기록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제 남아있는 온라인 투표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회원들이 투표에 참여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선거에 회원들이 등을 돌리게 된 이유는 그 동안 의사협회나 역대 회장들이 회원들에게 뚜렷한 성과나 신뢰를 주지 못한 탓이 크지만, 선거 때마다 보이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의 남발이나 이전투구의 혼탁한 모습 또한 못지않다. 한 마디로 ‘후보들은 과열, 회원들은 냉담’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시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의협의 선거관리규정도 한 몫을 했다. 현실 정치의 선거 규정은 공직선거법을 비롯한 관련 법규를 시시각각 고쳐가며 트렌드를 맞춰가고 있는 데 반해, 의협은 몇 발짝 뒤처져 근근이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예컨대, 많은 비용이 들고 참여도도 낮은 데다 툭하면 부정투표 의혹까지 사고 있는 우편투표를 아직까지 시행한 결과,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무조건 당선되고만 보자는 식의 불법, 탈법 선거운동들을 엄하게 다스리지 못하여 선거 때마다 선관위의 주의나 경고가 쏟아지지만, 정작 당선이 무효가 되거나 불법을 저지른 자들을 선거 후에도 실정법으로 처벌한 예가 거의 없다. 한 마디로 선거가 끝나면 다 묻혀버리고 마니, 다음 선거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거다.
따라서 이번 선거 후에도 '좋은 게 좋은 것' 식으로 넘어간다면 다음번 선거에선 회원들의 무관심과 운동의 혼탁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시대에 맞는 선거관리 규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예를 들어, 선거의 결과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부정한 선거운동을 저지른 후보자는 단 1회의 징계로도 후보 자격을 박탈할 수 있어야 하고, 선거가 끝난 후에도 당선을 무효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당선만 되면 끝'이라는 구시대적인 사고로 선거의 룰을 위반하는 후보를 솎아낼 수 있다.
또한 경고를 받은 후보나 회원들은 의협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후보의 경우 선거 기탁금을 돌려주지 않는 식의 실질적인 제제를 가해야 한다. 만약 후보나 선거운동원 등이 단순히 선거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정보통신망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경우 징계와는 별도로 선관위가 직접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불법 탈법 선거운동의 여지를 뿌리 뽑아야 한다.
회원들의 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는 문자메세지로 자꾸 재촉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포지티브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투표자에게 연수평점을 부여하거나, 추첨을 통해 경품을 제공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우편투표는 폐기하고, 모두 온라인 투표로 전환하는 것이 투표율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나아가 보다 공정하고 효율적인 선거 관리를 위해 선거공영제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회장 선거를 국가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고, 의협의 선관위는 이를 도와 협회 내의 사무를 책임지는 등의 방법이다.
늘 그렇듯, 선거만 끝나면 이러한 논의들이 다시 묻혀버릴까 두렵다. 선관위는 물론 의협의 대의원이나 지도자들은 지금부터 선거규정 개정을 추진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