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주당 80시간 근무제를 골자로 하는 수련제도 개편안에 이어 전공의 특별법까지 궤도에 오르면서 수련환경 개선에 속도가 붙고 있다.
물론 일부에서 전공의들에게 허위로 근무시간표를 작성하게 하는 등 불법과 편법 사례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수련환경 개선이 현실화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움직임에 맞물려 전공의 대체 인력에 대한 논의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주당 100시간을 넘어서던 전공의 근무시간이 80시간으로 줄어들면서 누군가는 이들이 담당하던 업무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행 초기에는 현재도 일부 병원에서 운영중인 PA(Physician Assistant)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논의는 다소 사그라드는 듯 하다.
대신에 최근 대안으로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는 것이 바로 호스피탈리스트다.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의사를 고용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호스피탈리스트는 의협을 비롯해 대전협 등 의료계 대부분이 그 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일부 병원들은 사회적 시선과 전공의들의 요구에 밀려 이미 고용을 하거나 채용에 나선 곳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이 대안은 곳곳에서 허점을 보이며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쉬운 예로 서울대병원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3월 전공의가 부족한 외과에 3명의 호스피탈리스트를 고용했지만 한달만에 병원을 떠나면서 벌써부터 공백이 생겨나고 있다.
국내 최고라고 부르는 서울대병원에서 일어난 이 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연 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가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수련제도 개편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던 호스피탈리스트. 그렇다면 왜 빠르게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호스피탈리스트 도입 취지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한 배경은 바로 전공의 대체 인력에 대한 논의에서다.
전문의로 전공의 업무를 대체하겠다는 의도에서 이미 부작용이 불가피한 오류가 생겨나는 셈이다.
물론 보다 많은 전문의를 채용해 전공의들이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 전담 의사라는 한정된 역할의 전문의라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대다수 대학병원에서는 전공의가 병동 주치의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는 중요한 수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내과에 호스피탈리스트를 고용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과연 누가 오더를 내야 하는가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전공의가 전문의에게 오더를 내리는 것은 상식상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호스피탈리스트가 전공의에게 오더를 내린다면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 된다.
또한 만약 호스피탈리스트가 완벽하게 주치의 업무를 맡는다면 전공의들의 수련 기회 또한 박탈당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페이, 즉 임금에 대한 문제도 중요한 부분이다. 중증환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병원에서 입원 환자를 전담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전문의가 필요하다. 이에 맞춰 임금을 책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빅5 등 대형병원들조차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있는 상황에 과연 이러한 전문의들을 채용해 유지할 수 있는 병원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아무런 권한과 지위 없이 숙련된 전문의가 입원 환자만 보기 위해 호스피탈리스트를 지원할지도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미국에서 성공한 제도라는 근거에만 치우쳐, 또한 전공의 대체 인력이 시급하다는 여론에 밀려 무작정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곤란하다.
호스피탈리스트는 만능 열쇠가 아니다. 과연 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제도가 가능할지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 없이는 서울대병원과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