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콘라트 뢴트겐(Wilhelm Conrad Rontgen)은 각종 진공관 시험에서 전하가 방전되는 작용을 관찰하던 중 음극선이 형광작용을 하는 것을 발견한다.
이어 마분지 덮개로 진공관을 덮고 실험해도 발광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수차례 관찰한다.
이때 형광이 발생하는 원인이 방전관이었음을 밝혀내고 기존 광선보다 훨씬 큰 투과력을 가진 방사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는 이를 다른 방사선과 구별하기 위해 ‘X선’이라고 이름 붙였다.
독일 물리학자이자 세계 최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역사적인 날이다.
이를 토대로 개발된 X-ray 진단기기는 영상의학 분야에서 CT·MRI가 등장하기 전 약 50년간 인체 내부 영상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의료기기였다.
지금도 병의원 대부분은 단순 흉부 및 복부, 부비동, 경부 연조직, 유방 촬영에 X-ray를 사용하고 있다.
인체 내부 영상을 필름으로 구현한 1세대 아날로그 방식에서 2세대 디지털 X-ray(DR)로 발전한 X-ray가 또 한 번 혁명적인 진화를 앞두고 있다.
기존 장비보다 방사선량은 10분의 1 수준이지만 고해상도 영상을 구현하고 연속촬영이 가능한 차세대 X-ray 상용화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경희의대 의공학교실 류제황 교수가 개발을 주도한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CNT) 기반 차세대 디지털 의료용 X-ray를 소개한다.
방사선량 10분의 1 수준…높은 해상도·연속 촬영까지
경희대 산학협력단은 지난달 21일 한국의료영상품질관리원과 차세대 의료용 방사선의학영상장비 개발을 위한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류제황 교수는 “에디슨의 필라멘트(Filament)형 전구가 개발된 이후 현재 가시광선 영역은 급격히 발전해 LED·OLED 등 새로운 기술이 보편화된 반면 X-ray 장비들은 아직까지도 아날로그식 필라멘트형 전구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경희대 나노기반 차세대 방사선 연구단이 개발한 콘(Cone) 타입 탄소나노튜브(이하 CNT) 기반 디지털 X-ray 장비는 의료용 방사선기기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왜 X-ray가 ‘아날로그식 필라멘트형 전구 형태’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을까.
필라멘트를 사용하는 전구와 X-ray가 유사한 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구와 마찬가지로 X-ray 역시 진공 상태에서 필라멘트를 사용, 이를 가열해 얻어진 열전자를 고전압에서 가속해 금속 타깃에 충돌시켜 X-선을 발생시킨다.
뢴트겐이 1895년 11월 8일 X선을 발견한 지 120년이 지난 지금도 X-ray 진단기기는 1879년 12월 3일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에 사용한 소재와 같은 ‘필라멘트 열전자 기반’ 소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류제황 교수는 “차세대 CNT 기반 X-ray는 기존 필라멘트 열전자 기반 소스 대신 Carbon(탄소) 전계 방출(field emission) 기반 나노 소재를 이용한 X-ray 소스를 활용해 저선량으로 고해상도 영상을 구현하는 것은 물론 연속 촬영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류 교수가 CNT 기반 X-ray 개발에 뛰어든 시점은 2007년.
당시 경희대는 서울시가 산업기술기반 구축사업으로 추진한 지원과제에 ‘나노 기술을 이용한 X-ray 튜브 개발’이 선정돼 5년간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5년간 연구 끝에 2012년 서울시로부터 과제 우수판정을 받은 뒤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돌입, 2013년 CNT 기반 X-ray 소스 개발을 마치고 올해 4월 초 상용화 직전 시제품을 선보였다.
CNT 기반 X-ray는 기존 X-ray 광원기술 한계를 극복한 차세대 방사선진단기기로 평가받는다.
이유인 즉, 기존 X-ray는 전자 방출을 위한 필라멘트 열음극 튜브(thermionic tube)에서 발생하는 200°C 이상 높은 열로 인해 광원의 수명이 1년 정도로 짧다.
또 전자 방출을 위한 높은 전력이 요구되고, X-ray 발생을 위한 응답시간(response time)도 느리다.
이밖에 고전력 장치의 부피와 중량으로 인한 공간적 제약은 물론 이동형 검사에도 사용이 쉽지 않다.
여기에 방출전자 분포가 균일하지 못해 영상 분해능과 해상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
반면 CNT 기반 X-ray는 상온에서 전자 방출이 가능해 광원 수명이 월등히 길고, 필라멘트 대비 전자 방출 효율도 우수해 고휘도·고효율 X-ray가 발생한다.
Table-Top 형태의 콤팩트한 X-ray 발생 광원장치는 외부펄스 전압을 통한 방출전자 제어가 가능하고 전자 집속 및 방사선 선질이 우수해 분해능과 해상도 모두 뛰어나다.
류제황 교수는 “기존 X-ray는 다량의 방사선이 방출되고 화질이 선명하지 못하며 연속 촬영이 극히 제한적이다. 뿐만 아니라 높은 작동 온도, 큰 장비 사이즈, 느린 응답 속도 등 오래된 기술의 한계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CNT 기반 X-ray는 기존 장비에 비해 방사선량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화질 선명도가 우수하며 연속 촬영은 물론 콤팩트한 사이즈로 제품화가 가능해 활용도 또한 높다”고 밝혔다.
“한국 원천기술 확보…성공적인 상용화는 의사들 몫”
전 세계적으로 X-ray 생성과 관련된 전자 소스를 연구하는 그룹은 10곳 내외.
이중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은 가장 선도적인 연구를 해온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류 교수가 있는 경희대는 이 보다 후발주자에 속한다.
하지만 올해 초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발표한 X-ray 생성에 관한 전자 소스 리뷰 논문에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과 경희대의 전자방출원 전자주사현미경 이미지가 소개됐다.
더욱이 한국의 경희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송윤호 박사)은 이 논문에서 X-ray 생성 전자 소스와 모듈 모두 앞선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류제황 교수는 이처럼 한국이 CNT 기반 X-ray 원천기술을 확보한 만큼 방사선진단기기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는 “CT·MRI는 다국적기업들이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며 “더욱이 대형병원 대부분은 GPS기업(GE·PHILIPS·SIEMENS) 장비만 쓰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GE헬스케어·지멘스·도시바 등 다국적기업들 또한 탄소나노튜브 기반 X-ray 연구를 하고 있다”며 “한국이 이 분야에서 조금만 타이밍을 놓치면 여타 의료기기처럼 다국적기업의 높은 장벽에 막혀 진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기존 필라멘트 기반 X-ray·CT와 전혀 다른 전자 소스와 모듈을 적용한 CNT 기반 X-ray는 한국이 원천기술을 확보한 만큼 향후 나노 소재를 이용한 방사선진단기기 시장선점에 큰 역할이 기대된다.
이에 앞서 CNT 기반 X-ray의 성공적인 상용화는 어디까지나 의사들의 관심과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다.
류 교수는 실제 시제품 개발과정에서 대학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들을 상대로 CNT 기반 X-ray에 대해 소개하고, 그 효용성을 적극 알리는 노력을 병행했다.
기존 X-ray와 차별화된 전자 소스와 모듈 영상처리 기술을 통해 저선량·고해상도 영상 연속 촬영 등 많은 장점이 있지만 이를 사용하는 건 결국 의사들의 몫이다.
그는 “오랜 기간 익숙한 장비를 써왔던 임상의사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개념의 국산 X-ray 사용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영상장비의 안정성 등 신뢰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CNT 기반 X-ray의 장점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작업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무엇보다 CNT 기반 X-ray가 환자와 병원 모두에게 큰 편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했다.
류제황 교수는 “환자는 짧은 시간에 저선량으로 촬영하기 때문에 고해상도 영상을 통해 빠른 진단은 물론 방사선 피폭 우려 또한 크게 줄일 수 있다”며 “병원 입장에서도 빠른 촬영이 가능해 장비 회전율을 높이고 조기 진단과 진단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