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 전, 대한한의사협회는 영문 명칭을 쓸 때 '오리엔탈(Oriental)'을 빼고 'The Association of Korean Medicine(AKOM)'이라 쓰기로 했다.
'Korean Medical Association(KMA)'이라는 영문명칭을 써왔던 대한의사협회는 오인 또는 혼동의 우려가 있다며 명칭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항고와 상고 끝에 결론은 의협의 패. 2013년 6월, 대법원은 한의협의 영문 명칭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문제없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의협은 '가처분 신청 결과'에 굴하지 않고 본안 소송에 돌입했고 그 결과가 12일 나왔다. 그러나 결론은 또다시 '패'.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재판장 염기창)는 의협이 한의협을 상대로 제기한 영문 명칭 사용 금지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한의협의 영문 명칭 사용이 상법상 타인의 영업으로 오인시키는 상호 사용 행위 및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 주체 혼동 초래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의협에게 한의협의 영문 명칭에 대한 사용 금지 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4가지 이유를 들어 한의협 손을 들어줬다.
우선 상법 및 부정경쟁방지법에서 타인의 상호 상표에 대한 사용 금지 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영업상 이익을 보호하는 취지다. 그런데 의협과 한의협은 비영리법인으로서 영리행위가 설립 목적 및 활동 내용의 근본적인 부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재판부는 또 "의협의 영문 명칭 중 Medical, Association은 기술적 표장이고 Korean은 지리적 표장에 불과해 의협의 영문 명칭에 자타 상표의 식별성이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영문 명칭 중 Korean medicine 그 자체가 '한의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위구르 전통의학의 영문 명칭이 Uyghur medicine이고 티베트의 전통의학 영문 명칭은 Tibetan medicine이며 한의학 한문 명칭은 '韓醫學'인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의협의 영문 명칭이 바뀐 경위를 고려하면 의협의 영문 명칭과 오인 혼동을 일으킬 목적으로 현재와 같은 영문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의협 한특위 "항소 적극 검토"…한의협 "당연한 결과"
법원 결과를 받아든 각 협회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관계자는 "한의학은 의학이기보다는 전래 요법 중 하나다. 영문 명칭 변경으로 한의학이 한국 대표 의학인 것처럼 하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라며 "1심 판결이기 때문에 항소를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의협은 "당연한 결과"라며 반색했다. 한의협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2013년 하반기부터 이미 바뀐 영문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의협 관계자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이미 계속 쓰고 있었고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