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수가와 환자들의 의료기관 이용 문턱이 낮다는 등의 장점들이 결국 메르스 확산의 주범으로 드러난 만큼 의료체계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5일 대한의사협회는 의협 회관에서 '메르스 사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란 주제로 공중보건 위기 대응체계의 진단과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토론회는 메르스 확산 사태가 우리나라 공중보건체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 아니라 사스와 신종플루를 거치면서 지적됐던 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반성에서 기획됐다.
추무진 의협 회장은 "메르스 사태가 우리나라 공중보건에 던지는 경고를 소홀히 여긴다면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가 반복될 것이다"며 "이에 의협과 대한의학회가 공동으로 메르스 사태가 던지는 교훈을 얻기 위해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메르스 사태의 본질은 부실한 국가방역 체계와 의료전달체계 붕괴의 합작품이다"며 "향후 국가방역 체계를 재구축하고 붕괴된 의료전달체계를 재확립하는 정책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병원의 대응체계 및 감염 치료 인프라 강화'를 발표한 김태형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학술이사는 아예 메르스 사태를 '을미대란'으로 규정했다.
김 이사는 "한국 사회에서 메르스는 상당히 파급력이 강했다"며 "우리나라의 의료기관, 전달체계, 이용 행태에 마치 합목적적으로 최적회 된 최악의 바이러스가 메르스가 아닌가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방역의 대상은 생물학적인 차원이나 개별 병원의 감염 관리로 해결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에는 낙타가 없지만 밀집된 의료 기관은 병원균의 저장소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나라의 의료의 장점이 단점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판단.
"메르스 사태는 을미대란,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화를 불렀다"
김태형 이사는 "낮은 수가가 환자들의 의료기관 이용 문턱을 낮추기는 했지만 많은 양의 진료를 부추기는 단점도 발생시켰다"며 "환자들이 다양한 소비욕구에 따라 의료기관을 쇼핑한 것도 메르스 확산에 한몫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가 민간 의료기관에 모든 방역을 맡긴 행태 역시 컨트롤 타워 부재로 인한 메르스 확산에 원인이 됐다"며 "이제라도 보건소와 지역 보건당국이 유행 확산시기에 따라 선별진료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효율성에 집중한 국내 의료 현실에 대한 성토는 계속 이어졌다.
박근태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총무이사는 "원가의 70%가 되지 않은 저수가 기조가 결국 낮은 의료비로 인한 의료 쇼핑을 부채질 했다"며 "적정 수가를 통한 올바른 의료환경 체제 구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건소마저 보건의료의 중요성을 간과한 정부나 지자체의 선심성 공약 도구로 전락했다"며 "보건소가 본연의 업무인 전염병 및 질병 예방의 관리 대신 동네 의원과의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갑 의협 신종감염병대응 TFT 위원장은 "메르스 유행의 감염 관리 측면에서 보면 관리 역량과 무관하게 모든 규모의 병원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며 "다인실 입원을 권장하는 의료보험 제도, 호흡기 관련 격리 병실 사용의 어려움 등 감염관리의 난맥상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면회나 방문 등 자유로운 병원 내 출입 문화와 대형병원 쏠림 현상, 규격화된 음압격리실 부족도 메르스 사태에 원인이 됐다"며 "감염관리 체계의 개편 방향으로 전담 인력 배치 및 인건비 지급과 교육 강화, 지역내 감염관리 네트워크 구성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감염관리 체계를 개편하기 위해 ▲보호자 없는 병동 확대 적용과 면회 제한 ▲대형병원 쏠림 현상 개선과 응급실 내 감염병과 비감염병 별도 진료구역 설정 ▲다인실을 1, 2인실 병실로 개선해야 한다는 게 이재갑 위원장의 제안.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도 병원쇼핑과 응급실 과밀화 등 국내 의료체계를 메르스 확산의 주점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병원 이용문화 개선과 의료체계의 체질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그 일환으로 문병 시간 지키기 등 문병 문화 선진화, 감염환자 1~2인실 건강보험 급여, 중환자실 및 응급실 격리실 확대, 감염관리료 인상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