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천연물신약 고시 무효 소송
천연물신약은 한약일까, 양약일까?
법원은 "한의사는 서양의학적 원리에 따라 만든 천연물신약은 처방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하며 이 같은 과제를 던졌다.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재판장 황병하)는 20일 대한한의사협회와 한의사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상대로 제기한 고시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한의협은 3년여 전 식약처가 개정 고시한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 신고에 관한 규정' 중에서도 '기원생약 등의 사용례가 있으나 규격이 새로운 생약(추출물 등)의 단일제 또는 복합제(이하 기원생약 등)' 항목을 문제 삼고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항목이 들어있는 고시 때문에 천연물신약의 사용 및 개발에서 한의사들이 배제된다는 게 한의협의 주장이었다.
현재 ▲녹십자 신바로 ▲SK케미칼 조인스 ▲동아제약 스티렌·모티리톤 ▲안국약품 시네츄라 ▲한국PMG제약 레일라 ▲구주제약 아피톡신 등 총 7품목이 천역물신약 허가를 받은 상태다.
2심 재판부는 한의협과 한의사에게 소송을 제기할 자격 자체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한의협과 한의사는 천연물신약 품목허가에 직접적인 변동을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천연물신약 품목허가가 무효로 된다고 하더라도 해당 약이 품목허가를 받지 않거나 품목신고가 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며 "의사나 한의사 모두 처방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고시가 무효라고 해서 곧바로 한의사에게 처방권이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고시 무효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대신 재판부는 식약처의 품목허가 처분에 대한 다툼은 가능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고시에 따라 품목허가를 받은 생약 제제는 서양의학적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생약 제제로 품목허가 처분이 잘못된 것"이라며 "각 천연물신약의 품목허가 처분에 대해 다퉈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고시는 서양의학적 원리로 만든 생약제제로 한정"
1심과 2심 재판부의 의견이 갈리게 된 이유는 천연물신약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한의협이 문제 삼고 있는 기원생약 등을 제조하는 방법이 한방원리 또는 서양의학 중 어느 하나의 고유한 방법론에서 기원하는 것이라고 볼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식약처는 천연물신약 범위에서 한약제제를 제외했다"며 "천연물신약 범위에서 한약제제를 제외할 특별한 과학적 근거를 찾기 어려운데다 수긍할 수 있는 정책적인 이유도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고시가 천연물신약을 서양의학적 원리로 만들어진 약으로 규정하는 것은 한의사의 처방에 관한 권리 또는 법적 이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천연물신약 고시 자체가 서양의학적 원리에 따라 만든 생약제제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식약처와 제약사는 원칙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2심 재판부는 "기원생약 등은 한방원리로 만들 수도 있고 서양의학적 원리로 제조할 수도 있다"며 "고시에 규정된 항목은 서양의학적 원리로 만든 것을 말한다"고 못 박았다.
이어 "서양 의학적 원리에 의해 제조된 기원생약 등은 한약제제가 아니기 때문에 의료법에 의해 한의사가 처방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