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통사고로 심각한 중증외상을 입어 생사가 위태로운 김 씨. 구급차는 그를 가장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수술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해당 병원엔 수술실이 꽉 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떨어진 대형병원으로 다시 이송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병원 역시 다른 응급환자들로 인해 대기를 해야했다. 이렇게 해서 김 씨가 사고부터 수술까지 걸린 시간은 총 5시간. 그러나 중환자실 병상에 여력이 없어 수술 후 다시 응급실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현재 국내 중증외상환자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일반적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가천대 길병원(병원장 이근)이 인천권역외상센터를 1년간 운영하면서 중증외상환자 진료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천대 길병원 외상외과 유병철 교수는 인천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기 전인 2009년부터 2013년과 운영 이후인 2014년으로 구분해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중 심한 복부 출혈로 응급수혈을 받은 환자 40명을 대상으로 수술실 입실까지의 시간을 비교 분석했다.
분석 결과 위 환자들이 병원에 도착해 수술실에 입실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권역외상센터 설립 이전에는 평균 144분었던데 비해 설립 이후에는 95.6분으로 평균 48분 가량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메디칼타임즈는 유병철 교수는 만나 인천권역외상센터의 성과와 국내 중증외상치료의 현주소와 개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의료진들에 따르면 중증외상환자가 병원에 들어와 수술까지 들어가는데 평균 2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처럼 오래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길병원도 인천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기 전에는 응급실에 들어온 초중증외상환자가 수술까지 평균 2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대부분 병원을 보면 환자가 응급실로 들어오면 저혈압, 쇼크상태 등 환자의 상태와 관련없이 일단 응급의학과 의사가 먼저 보고 어떻게든 검사를 한 후 그제서야 외과의사가 내려오는 시스템이었다. 그것도 보통 전공의 1년차가 오고 그 다음에 3년차에게 연락하고 3년차는 스탭에게 연락해 스탭이 수술을 하자고 하면 그때부터 수술실을 찾는 시스템이었다.
특히 낮에는 수술이 많다보니 수술실이 없으면 환자는 수술실과 마취과 의사가 준비될 때까지 최소 30분 이상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건강한 일반인에게 30분은 금방 가지만 환자에겐 상당히 긴 시간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가 수술을 받기까진 아무리 빨라도 2~3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골든타임이 1시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2~3시간이면 너무 늦지 않나.
일반인들은 골든타임을 1시간으로 알고 있는데 정해져 있는 것은 없고 빨리 할수록 좋다.
중증외상 환자가 2~3시간 정도 수술을 못하면 피를 2~3리터 정도 흘리게 된다. 피가 2~3리터 났을 때 한두시간 안에 수술을 하면 환자가 아무리 수혈을 많이 받아도 회복이 되는데 그 시간을 넘기면 혈관이 이완되는 등 몸의 반응이 바껴서 지혈을 해도 혈압이 돌아오지 않는다.
경험상 사고 후 2~3시간 이내에는 의료진이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병원에 도착해서 수술까지 2~3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도착하기 전까지 소요되는 시간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반 병원들을 많이 거쳐서 들어온다. 그 시간까지 감안하면 사고 후 수술까지 5~6시간이 걸린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아무리 잘하는 의사가 수술을 하더라도 사망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생긴다.
길병원은 외상환자가 병원 도착 후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비결은.
처음 인천권역외상센터를 개소했을 당시는 1시간까지 걸렸으나 그동안 마취과와의 컨퍼런스 등을 통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요즘엔 대부분 30분이면 수술실에 들어간다. 외상 환자를 위한 시설, 장비, 인력 등 모든 시스템이 고루 갖춰져 유기적으로 움직인 결과다.
중증외상치료에 대한 인프라의 확충이 중요하다. 수술실과 중환자실 등 시설 장비가 당연히 갖춰져 있어야 하고 마취과 전문의, 수술간호사 등도 외상외과를 도와줘야 한다.
인천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환자의 응급처치와 검사, 수술에 이르는 전 과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권역외상센터는 1층 소생구역, 외상환자 관찰구역, 소수술실, 영상진단구역을 비롯해 3층 전용 수술실, 5층 전용 중환자실 및 혈관조영실 등을 갖추고 있다. 또 외과(흉부외과, 정형외과 포함) 전문의 10명을 비롯해 응급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며 환자를 치료한다.
권역외상센터의 안정적인 운영으로 올해 들어서는 대부분의 환자가 빠르면 30분, 늦어도 60분 이내에 수술실에 입실할 만큼 도착부터 수술까지의 시간을 단축했다.
길병원 인천권역외상센터는 외상전용 수술실을 2개 갖추고 있으며 이곳에선 외상환자만 수술이 가능하다. 또 소생구역에서도 정말 급한 사람들은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요즘 대학병원들마저 중환자실이 부족한 곳이 많다. 내가 전공의 시절만해도 수술을 받은 환자가 중환자실에 병상이 없어 다시 응급실로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길병원 인천권역외상센터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길병원 인천권역외상센터를 찾은 초중증외상환자가 수술실까지 들어가는데 평균 95분 정도 걸린다. 기존 대비 50분 가까이 줄었다.
중증외상 환자가 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지난해 초중증외상환자가 한명 실려왔다. 여성환자였는데 자전거 처음 배운 날 넘어지면서 핸들에 가슴을 찍혀서 간이 파열된 상태였다. 소생실로 들어온 후 심장마비가 생겨서 CPR을 하면서 바로 수술을 준비했다. 30분 정도 걸렸다. 힘든 수술이었지만 무사히 퇴원했고 현재는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그 환자가 다른 병원을 들렀다 왔다거나 예전 프로세스대로 2~3시간을 기다렸다면 수술을 못 들어갔을 것이다. 심장마비 상태였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심정지 왔을 것이고, 2~3시간이 지나 수술했다면 심부전 등 다른 합병증 때문에 결국 돌아가셨을 것이다.
길병원 인천권역외상센터와 다른 외상센터와의 객관적 비교가 가능한가.
현재 외상센터를 개소한 병원은 총 4곳이며 곧 을지대병원에서도 개소한다. 그러나 객관적 비교 지표는 없다. 현재로선 중증 외상환자를 얼마나 많이 처리했는지, 수술실에 얼마나 빨리 들어갔는지 등을 평가한다. 복지부에서는 예방가능 사망률을 이야기하는데 사실 주관적인 부분이 많아 비교하기 어렵다.
복지부에서 요구하는 기준 인력을 맞추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인천권역외상센터에는 전공의는 한명도 없으며 외상 전담 전문의가 11명이 있다. 그러나 복지부에서 요구하는 조건은 24명 이상이다.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기준이다.
병원에 있어보면 중증외상환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환자가 많은 날은 하루에 7~8명 정도다. 그런데 복지부는 연구용역 결과, 그보다 많은 환자가 올 것으로 예측해서 24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길병원만 해도 중증외상환자가 일년에 500명 정도 오는데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24명이 다 있어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국에는 길병원의 절반 수준인 일년에 중증외상환자를 200명 정도 보는 병원이 많다. 거기에 24명 전문의를 데려다놓고 상주시킨다는 건 뽑기도 어렵거니와 현실적으로도 안 맞는다.
중증외상진료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상태에 따른 적절한 이송이다. 이송 단계에서 권역외상센터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인천 관내 소방대원 중에서도 인천외상센터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있다. 길병원이 중증외상 환자를 길병원으로 데려 오라고 강제할 순 없다. 중증외상환자는 외상센터로, 나머지 환자는 각 병원으로 분산하는 게 중요한데 소방에서 그런 개념이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복지부가 지침을 내리긴 했지만 소방은 복지부 산하가 아니라 행정안전처 산하인데다 일선 지역 소방서는 지자체 소속이다. 복지부가 공문을 내려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 길병원 인천권역외상센터는 외상외과 교수들이 나가서 이런 점을 소방대원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앞으로 목표와 제도적 바람은.
중증외상환자가 들어오면 대기시간 없이 바로 수술할 수 있도록 하고 싶고, 머리 다친 환자도 꽤 많은데 외상센터 내 신경외과에 대한 프로세스도 강화하고 싶다.
현재 복지부에서 전문의 인건비에 한해서만 운영비를 지원받고 있다. 권역외상센터는 전공의가 배치가 돼 있지 않은데다 환자가 한명 오면 7~8명이 붙어야 한다. 외상환자들은 특히 손이 많이 가서 수술간호사 등 전문 간호인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런 간호사들을 포함한 나머지 운영인력에 대한 인건비는 병원이 부담하고 있다.
간호인력 뽑지 않으면 전문의들만 바글바글 모여서 환자를 볼 수 밖에 없다. 길병원은 원장님이 응급의학과 전문의라서 많이 도와주긴 하지만 다른 외상센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복지부가 전문의 인건비만 지원하다보니 다른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애로사항이 많다. 더욱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