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정원의 가운데 나있는 길이 정원의 끝에서 약간 오르막을 이루는 곳에 이르면 '바뷔스 쎌람(Bâb-üs Selâm)'이라고 불리는 톱 카프 궁전의 두 번째 문인 경의의 문이 서있다. 일반 백성은 이 문을 드나들 수 없었다. 지금도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는 없다. 이 문을 통과하려면 검색대를 통과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면서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때문이다. 무장군인의 모습에 그 옛날 예니체리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공연한 선입견일까?
톱카프 궁전에는 더 이상 술탄이 살고 있지 않은데 경호부대가 경비를 서는 이유가 있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톱카프 궁전에는 오스만제국 시절부터 보유하고 있는 값비싼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어 특별히 국방부가 관리를 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문 모양으로 된 정의의 문 양편으로는 고깔 모양의 탑이 있다. 경의의 문 오른쪽 밖으로 '망나니 샘'이라고 한 샘이 하나 있다. 망나니들이 죄수를 참수한 다음 칼을 씻던 곳이다. 참수된 죄인의 머리는 정의의 문 위에 효수하여 지나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했다니 보기에 끔찍했을 것 같다.
검색대를 지나 제2 정원에 들어서니 다섯 갈래의 길이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진다. 중앙통로 옆으로 늘어서 있는 향나무가 인상적인데 특히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 두 개가 몸을 섞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교도를 포용하던 그 옛날 술탄의 모습이 연상된다.
다섯 갈래의 가장 왼쪽 길은 마구간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에서 두 번째 길은 각료들의 회의실이 있는 디반 건물로 이어진다. 마구간이 끝나는 곳에 아담한 건물이 있는데 궁중여인들이 거처하는 하렘이다. 하렘 입구를 지나면 '정의탑'이라고 하는 뾰족한 탑이 서있는데, 커다란 창문이 달린 이 탑은 궁전의 내부를 감시하던 망루였다. 디반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각료들이 회의하던 방이 있는데, 벽 중간에 창살을 질러 넣어 방안에서는 안을 볼 수 없도록 한 창이 하나 있다.
술탄이 그 안에서 각료회의를 엿들었다고 한다. 각료회의를 디반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 건물을 디반건물이라고 했고, 제2정원을 '디반의 정원'이라고 한다. 디반 건물의 오른쪽으로 여덟 개의 작은 돔이 있는 건물이 재무부 건물이었다. 정원의 맨 오른 쪽 길은 식품창고로 이어지고, 두 번째 길은 주방으로 가는 길이다.
주방이 들어선 건물은 유목민의 겔을 닮은 모습으로 모두 10개의 주방이 있는데, 입구에서 가까운 첫 번째 주방은 술탄의 식사를 준비하던 곳이고, 두 번째 주방은 술탄의 어머니, 세 번째는 술탄의 여자들, 네 번째는 내시장들, 다섯 번째는 재상과 대신들, 여섯 번째는 궁전 관리들 등의 순서로 식사를 준비했다. 한창 때는 하루 3천명에서 5천명 사이의 궁전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양만해도 하루 200마리를 잡았다던 이곳 부엌에서는 더 이상 불을 지피지 않고 다만 주방기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커다란 솥들이 걸려 있고, 커다란 삽 같이 생긴 조리기구들이 걸려 있는데, 오늘날 대단위 급식시설과 비교해보아도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톱카프 궁전은 모두 1만2천여점의 도자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대부분 원나라에서 청나라에 이르는 중국도자기이고 3천 점 정도가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필자의 안목이 시원치 않은 탓인지 술탄의 거처에서 사용하기에는 격이 떨어져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반의 정원 끝에 단층 건물의 입구처럼 생긴 제3의 문이 있다. '바쉬스 싸데Bab-üs Saadet)'라 불리는 세 번째 지복의 문은 군주와 군주의 측근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지복의 문 바로 뒤에는 외국 사절을 접견하는 알현실이 있다. 그 뒤로는 '백인 내시의 정원'이라고 부르는 제3 정원을 건물들이 장방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이곳은 술탄의 사적 공간이었는데, 알현실 다음에 작은 도서관이 있고, 오른쪽 끝에 있는 방은 술탄의 보물창고이다.
이곳의 백미는 무려 86캐럿이나 되는 다이아몬드이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것으로 주위에 49개의 큼직한 다이아몬드로 장식하고 있어 누군가는 휘황찬란하더라고 했지만, 필자의 눈에는 그저 잘 세공된 큐빅 정도로 보였다. 이 다이아몬드는 '스푼 다이아몬드'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이 보석을 건진 어부가 세 개의 스푼과 맞바꾸었대서 붙였다고 한다.
이 보물창고에서 가장 큰 보석은 3.26킬로그램짜리 에메랄드 원석이다. 이렇게 대단한 보석들이라면 그림자만 지나가도 경보가 울리는 삼엄한 분위기에서 현란한 조명을 받으며 위용을 뽐내야 할 것 같은데, 이 보물창고는 정말 소박하다. 보물전시관 다음의 방에는 무엇을 전시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분명치 않다. 다만 전시실의 테라스에서 황금뿔만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연무 탓인지 보스포루스 다리가 흐릿해보였다.
지복의 문 맞은편의 아케이드에는 이슬람 성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집트와 메카 등지에서 가져온 예언자 무함마드의 치아와 턱수염, 활과 칼 두 자루, 망토와 깃발, 족적 등 예언자의 유물이 많고, 그밖에도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칼, 세례요한의 손뼈 등을 전시하고 있어 무슬림뿐 아니라 기독교도나 유대교도 모두에게 중요한 곳이 될 것 같다. 특히 커다란 쿠란이 전시되어 있는 방에서는 당연히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로 쿠란을 읽어주고 있어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품은 세밀화이다. 이슬람 세밀화는 이슬람 회화의 개화기를 대표하는 화법이다.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 간행된 마니교 경전의 삽화로 그려지던 것이 이슬람시대로 전해져서 바그다드에서는 12세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2). 우리나라에 오스만 세밀화가 알려지게 된 것은 아무래도 오르한 파묵의 일 터이다.
1591년 눈내리는 이스탄불 외곽에 버려진 우물 바닥에 죽어 누워있는 궁정 세밀화가 엘레강스가 자신의 죽음을 증언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에는 당시 이스탄불 최고의 미인 셰큐레를 둘러싼 러브스토리가 감추어진 가운데 표면적으로는 오스만 궁정의 세밀화가들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가운데 일어난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일부 세밀화가는 당시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고 있던 원근법을 오스만 세밀화에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세밀화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화가들이 갈등이 일으킨 사건이었다.
"세밀화가들이 나를, 그리고 우리의 모든 회화 전통을 배반했고, 술탄이 원한다는 이유로 서양화가들을 의욕적으로 모방하기 시작했네. (…) 우리 세밀화가들은 우리에게 일감을 주는 술탄이 아니라, 우리의 기예와 예술의 종이 되어야 하네. 그래야만 천국에 갈 수 있지(3)."라며 도제들을 가르쳐온 화원장이다.
하지만 술탄의 보물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수 세기에 걸친 세밀화 작품들의 경향을 분석해본 결과 세밀화가들은 늘 똑같은 그림을 그려왔다고 자신의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밀화의 기술이 전수되는 과정에서 서서히 변하는 세상이 반영되었더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제3 정원의 왼쪽에는 술탄의 여자들이 거처하는 하렘이 있다. 제2정원과 제3정원에 걸쳐 있는 이곳에는 약 250의 방이 있는데, 이곳을 보려면 별도로 지정된 시간에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우리의 가이드는 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입장할 수가 없었다. 이슬람 성물의 전시관 옆의 통로를 내려가면 제4의 정원에 들어가게 된다. 왼쪽으로는 황금뿔만과 보스포푸스해협의 입구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마르마라해가 펼쳐진다.
이곳에는 다양한 꽃을 심은 꽃밭들 사이로 정자들이 흩어져 있는데, 술탄은 이곳에서 주변을 물리고 쉬면서 명상을 즐길 수 이었다. 눈길을 끄는 정자로는 압뒬메시드의 정자, 라반 정자, 바그다드 정자, 이프타리예 정자 등이 있다.
참고자료
(1) wikipedia. Topkapı Palace.
(2) 정수일 지음, 이슬람 문명 260쪽, 창비, 2002년
(3)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권2 225쪽, 민음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