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안건심의가 시작되니 건정심 위원을 제외한 기자들은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차관 모두 발언이 끝나면 회의를 보좌하는 보험정책과장이 전하는 단골 공지사항이다.
건정심 위원들 임기 3년을 종료하는 마지막 회의가 열린 지난 18일 심사평가원 회의실 문도 굳게 잠겼다.
건강보험 관련 수가와 관련된 보건의료 정책을 심의 의결하는 최고 의결기구인 건정심.
가입자 대표와 공급자 대표, 공익대표 등 각 8명씩 총 24명이 요양기관 건강보험 관련 수가를 결정한다.
이중 공급자 대표는 의사협회 2명과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간호협회, 약사회 및 제약협회 각 1명 등이다.
정부 중심 결정이라는 공급자 측의 문제 제기는 차지하더라도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는 건정심 회의내용은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다.
속기사가 참여해 회의록을 기록하고 있지만 복지부 실수가 아니면 공개된 적이 거의 없다.
복지부가 건정심 위원들에게 보내는 전차회의록은 정리된 문구를 요약한 것일뿐 세부 발언 내용은 참석자들을 취재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건정심을 왜 비공개로 진행할까.
현 건강보험법 제4조(건정심)에는 ‘보건복지부장관 소속 건정심을 둔다’는 원칙 아래 요양급여비용(수가)과 보험료율 그리고 위원 구성 등으로 규정할 뿐 회의 공개 또는 비공개 조항은 모법과 시행령 어디에도 없다.
건강보험정책국 국·과장을 만나 물어보면 답변은 동일하다.
공무원들은 "건정심 회의를 공개하면, 이해관계가 갈리는 민감한 안건 의결 시 참석 위원 발언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비공개 불가피성을 설명한다.
한 발 더 나가가 "공급자 단체들도 공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당위성까지 곁들인다.
복지부 논리는 회의를 공개하면 가입자는 물론, 공급자 단체들이 눈치보기로 소신발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건정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가입자 단체와 공급자 단체 모두 부당한 안건이 상정되면 기자회견까지 자청하며 여론몰이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현안 발생 시 의결에서 항상 밀리는 공급자 대표들은 보도자료와 성명서를 통해 정부 중심의 건정심 회의 과정의 문제점을 강도 높게 지적하고 있다.
언제까지 문을 닫은 채 건정심을 운영할 것인가.
입법기관인 국회는 제19대부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했다.
법안소위 새누리당 이명수 위원장이 직접 비공개할 이유가 없다며 회의 투명성을 결정할 데 따른 조치이다.
건정심 보다 더한 민감한 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여야 의원별 발언내용이 모두 상세히 전달하게 된 것이다.
법안소위 공개 후 세부 내용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국회의원들의 발언 수위는 약화된 것이 아니라 더욱 견고해졌다.
언론 노출을 의식한 일부 발언을 제외하곤 복지부도 국회도 책임 있는 발언을 하며, 독자들은 법안심의 과정을 명확히 알게 돼 '카더라'라는 식의 선입관도 희석되고, 언론의 기능도 강화됐다.
한국 건강보험 체계를 부러워한다는 미국 등 선진국들이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가입자와 공급자, 공익 대표 등 총 25명이 비공개로 모든 비용(수가)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면 뭐라고 반응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