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은 공적 의료체계를 민간 주도의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의료가 공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의 통제와 충돌해 의료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의료 시장에서 전체 공급의 90% 이상을 공급하는 민간은 이익이 창출될 수 있는 곳에 자본(인력, 시설, 장비 등)을 투여하기 때문에 부문간, 지역간 불균형이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문제는 의료전달체계에서도 나타나게 되는데, 공급에서는 경쟁(인력, 시설, 기기 등)을 통해 상급병원이 환자유치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 것이다. 외래부문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의 점유율이 확대 돼 일차의료기관의 환자 이용률이 반토막 났다.
보건의료체계의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치를 기반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불·공급·전달체계를 동시에 아우르는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3차 의료기관에서 받는 2단계 진료는 1단계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요양급여의뢰서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받을 수 없다. 언제나 그렇듯 의료전달체계를 무색케하는 예외조항이 남아 있어 붕괴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행위별수가제에서 원가 이하의 의료 보험 만으로는 병원 경영이 힘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여기서 민간 부문은 내원 빈도를 증가시켜야 적자를 면할 수밖에 없다.
수가 통제가 되지 않는 비급여를 활용 기타 비 보험 진료 영역의 확장 없이는 의원을 유지하기 어려워 졌다. 그나마 비급여 진료조차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시장 가격 이하의 상품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수요는 접근성 제약 없이 최고의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의료 서비스 비용이 저수가로 길들여진 환자들은 외국의 고비용 의료비를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들의 의식 속에 의료비 상승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정치권의 선심성 저가 의료 강요가 당연한 것으로 수십년 이어지면서 의료의 질적 부분은 저수가임에도 고도로 선진화된 의료 시술을 강요받고 있다.
그 결과 공급자는 수익 보전을 이유로 필수 진단 검사보다 많은 검사를 할 수 밖에 없고, 1~2차 의료 기관에서 검사한 진단 결과가 있어도 3차 의료 기관은 중복 검사를 강요해 왔다.
일차의료기관은 내원 횟수를 늘이기 위한 치료의 연장이 부지기수로 이루어진 것이다. 3차 의료기관은 전원 된 환자를 동네 병원으로 다시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성질환자의 투약 일수를 120일 이상 처방 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일단 한 번 전원 된 환자가 다시 일차의료기관으로 회송 되는 비율은 5%에도 못 미치는 기현상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의원을 찾아도 충분한 만성질환자 조차 3차 의료기관 외래로 대거 이동하게 만든 이유는 투약 일수의 차이라고 까지 공공연히 하고 있다. 만일 일차의료기관에서 120일 이상 처방 한다면 분명히 삭감되고 말 것이다.
3차 의료기관은 처방을 고가약 중심으로 처방 하는데 일차 의료기관은 삭감 우려로 저가약을 선호 하도록 진료 처방약에 대한 감시를 실시간으로 받고 있다. 메르스 때 대형 병원에서 처방 내역을 의원으로 통보해 준다고 해도 의원에서 같은 약을 처방하면 삭감을 각오해야 한다.
외국은 의사의 진찰료와 행위료는 별도로 산정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행위료가 진찰료에 녹아 들어가 있다고 하면서도 진찰료는 외국보다 턱없이 낮게 책정 돼 있고 의원 진찰료는 요지부동이다.
진료 의뢰서 수가 산정으로 의료전달체계가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들은 없다. 대형 병원에서 4만2000원 회송 비를 받는 것보다 그 환자를 계속 볼 때 수백배의 부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전원 회송수가라니 누가 생각해 냈는지 의협의 주장이 아니길 기대해본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의 시작은 전원 의무제다. 일차의료기관의 의뢰서 없이 상급 병원 진료를 엄격하게 통제 하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의료전달체계를 논의 하는 것이 의료 수요자 입장에서는 불편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복 검사 등 과잉 진료로 그동안 막대한 의료비용을 오히려 더 많이 지불 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면 불편보다 얻는 이득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