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심장박동기(Pacemaker)·이식형 제세동기(ICD) 등 심장삽입 전기장치(Cardiac Implantable Electronic Device·CIED)를 이식한 심혈관질환 환자 ‘원격모니터링’(Remote Monitoring)이 활성화되고 있다.
미국·독일·호주를 비롯한 일본·중국·홍콩·일본·싱가포르 등 많은 국가에서 부정맥·심부전 등 심혈관질환자의 모니터링으로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불필요한 병원 방문을 줄여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경제성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의료계와 정부 간 원격진료(Telemedicine) 허용을 놓고 첨예한 갈등 속에서 의료적 순기능을 가진 원격모니터링이 정치적 논쟁에 매몰되고 법적·제도적 장벽에 막혀 도입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메디칼타임즈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개최한 ‘유헬스케어의료기기 사용 활성화를 위한 좌담회’에서는 의료계·정부기관·산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원격모니터링 도입 필요성을 논의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식약처 의료기기심사부 첨단의료기기과 강영규 연구관과 심평원 업무·인프라개선 TFT 산학협력단 김재선 단장·치료재료실 유미영 실장이 패널로 참여해 현 의료제도 안에서 원격모니터링 도입을 위한 개인정보보호·수가 개발 등 법적·제도적 문제를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원격모니터링 도입, 개인정보보호·보안 등 선결과제
의료법상 CIED 환자 원격모니터링 도입은 가능할까?
복지부는 의사와 환자 간 원격모니터링(지속적 관찰·상담·교육) 시행은 현재도 의료법상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복지부에 원격모니터링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한 답변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제4조에 따라 정보주체는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법령에 따른 동의를 거쳐 개인 건강상태에 대한 모니터링 정보를 의료인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이러한 정보의 송·수신과정에서 개인 건강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최선의 안전조치를 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건강정보 관리자 등은 이를 수집한 목적 외에 부당하게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간의 원격진료만을 허용하고 있음에 따라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모니터링의 경우 그 세부 내용이 의료행위가 아니라면 의료법령상 위법하다 할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복지부 유권해석만 놓고 보면 CIED 환자 원격모니터링은 국내 도입에 제약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해석에 따라 환자 건강정보로도 볼 수 있는 생체신호가 병원이 아닌 외부서버에 저장된다는 점은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CIED 환자 원격모니터링 과정을 살펴보면, CIED에서 나오는 환자 생체신호가 무선으로 트랜스미터(단말기)를 거쳐 외부서버에 저장된다.
외부서버에 저장된 데이터를 분석한 환자 상태 정보는 다시 의료진 및 병원과 환자에게 전송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문제는 이 외부서버가 CIED를 공급하는 다국적기업들이 미국에 두고 있는 진단지원시스템이라는 점이다.
환자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서버가 병원 내 있어야한다는 국내 규정에도 어긋날뿐더러 환자 생체신호가 미국에 있는 외부서버로 전송되기 때문에 보안문제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
실제로 좌담회 패널로 참석한 심평원 김재선 단장과 유미영 실장 역시 환자 데이터 관리주체와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다국적기업들은 CIED에서 나오는 신호가 환자의 정보가 아닌 생체신호 정보이기 때문에 엄격한 규정 적용은 무리가 따른다는 주장이다.
환자 정보 및 데이터 안전성과 보안과 관련해서도 미국의료정보보호법(HIPPA)과 개인정보공유협정인 EU 세이프하버(Safe Harbor), 정보보호국제표준 ISO 27001:2005 등 엄격한 국제 규정을 준수해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허가 시 제조사로 하여금 사이버보안(cybersecurity) 관련내용을 준수토록 한 FDA 규정도 따르고 있어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입장.
이와 관련해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박상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환자 개인정보가 병원 내 EMR 서버에 반드시 있어야하는데 원격모니터링의 경우 병원 밖도 아니고 국외로 나간다는 점에서 민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독일 같이 개인정보 보호에 굉장히 민감한 나라도 원격모니터링을 시행하고 있다”며 “이름·주민등록번호·핸드폰 번호와 같은 개인정보와 달리 원격모니터링에서의 개인정보는 디바이스 정보와 생체신호이기 때문에 기존 개념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또 식약처 의료기기심사부 강영규 연구관은 “식약처에서도 유헬스케어의료기기 허가를 내줄 때 데이터가 어디로 전송되고, 또 게이트웨이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보안문제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해결할 지 업체에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격모니터링을 국내 도입할 경우 생체신호정보 보안단계를 어느 수준까지 요구할지와 업체가 어떤 툴을 적용해 데이터 보안을 유지할지 검토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원격모니터링이 실제 상용화되고 활성화되려면 데이터 전송과 보안에 대한 표준화된 시스템 구축이 요구된다”고 제안했다.
원격모니터링 수가개발 논의와 설득 필요
개인정보 보호·데이터 보안문제와 함께 수가 개발 및 급여 적용 또한 도입에 앞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CIED 환자 원격모니터링을 시행 중인 호주·일본·독일·미국은 원격모니터링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반면 2013년 도입한 대만은 환자 본인부담으로 비급여다.
2015년 기준 호주의 경우 인공심장박동기(pacemaker) 환자는 대면진료(AU$34.75)와 1회 원격모니터링(AU$66.85) 보험급여가 이뤄진다.
제세동기(ICD/CRT-D) 환자 역시 대면진료(AU$94.75)와 2회 원격모니터링(AU$189.50)에 한해 수가가 적용된다.
일본 역시 대면진료 3600엔(약 3만6000원)·원격모니터링은 4개월마다 5500엔(약 5만5000원)의 보험급여가 이뤄진다.
CIED를 공급하는 다국적기업들은 “입증된 임상적 유용성과 전문가 합의를 바탕으로 미국·유럽·일본·호주 등 대다수 국가에서 원격모니터링 보험급여가 이뤄지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환자들의 임상적 혜택을 위해 보험급여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주장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원격모니터링을 통한 환자 생존율 개선, 병원 방문 횟수 감소, 진료시간 단축 등 의료 및 사회경제적 비용절감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설득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새로운 의료행위를 만들고 원격모니터링 수가를 책정해 어느 선까지 보험급여를 해 줄지 구체적인 검토 역시 선행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연세의대 순환기내과 정보영 교수는 “현재 CIED 환자들의 병원 대면진료 수가가 만만치 않다”며 “원격모니터링 수가를 대면진료보다 낮게 책정할 수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도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심평원 치료재료실 유미영 실장은 “원격모니터링이 환자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의사들이 제일 잘 알고 있는 만큼 이런 점들을 확실히 해주고 정부차원에서 필요성을 인정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수가 문제도 단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식약처 강영규 연구관은 “산업적 측면에서 유헬스케어의료기기를 활용한 원격모니터링 활성화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전제한 뒤 “다만 원격모니터링이 안전하고 효과가 있다는 체계적인 근거를 확보하고 의사들 사이에서도 충분한 공감대가 이뤄진 후 수가 개발 등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별로 의료시스템과 환경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해외사례만을 통해 무조건 원격모니터링 도입을 주장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반대로 환자 생존율은 물론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경제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원격모니터링 도입을 무작정 반대한다면 이 또한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의료계와 정부기관·산업계가 CIED 환자 원격모니터링의 임상적 유용성을 살펴보고 현 의료제도 안에서 적용 가능한 도입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어쩌면 원격모니터링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의사들의 높은 술기와 건실한 건강보험제도 등 의료강국이자 IT강국인 한국이 가장 높은 CIED 환자 생존율을 자랑하고 관련 산업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