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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문명의 완충지, 발칸[4]

동화 속 작은 마을 블레드(2)


양기화
기사입력: 2016-03-17 05:05:35
양기화의 '이야기가 있는 세계여행'

동화 속 작은 마을 블레드(2)


성모 마리아 승천교회의 정면 제단(좌)과 후면 성화(우)
제단 앞에는 종탑에 걸려있는 종을 타종하는 동아줄이 늘여져 있다. 사람들은 흔히 줄을 세 번 당겨 종을 울리면서 소원을 빈다. 사실은 한번 줄을 당겨 종소리가 세 번 나는 동안에 소원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종을 당기는 기술과 운이 함께 작용해야 가능한 일이다.

성모 마리아 승천교회에서 소원의 종을 울리게 된 것은 블레드성에 살던 과부 플록세나(Poliksena)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 남편이 도둑의 손에 죽은 것을 슬퍼하던 그녀는 블레드섬에 있는 교회에 종을 헌정하기로 하였다.

종이 만들어지자 배에 싣고 섬으로 향했는데 갑자기 일어난 폭풍에 배가 뒤집히면서 종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절망에 빠진 그녀는 로마로 가서 수녀가 되었고, 그녀가 죽은 뒤에 슬픈 사연을 듣게 된 교황이 종을 만들어 블레드섬의 교회에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종을 울리는 것은 그녀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 성모께 비는 것이다.(1)

요즈음에도 조용한 밤이면 호수 깊은 곳에서 나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도 전하는데 믿거나 말거나이다. 하지만 해가 저물면 블레드성 아래 절벽 바위에 플록세나의 얼굴을 비춰 블레드섬의 전설을 되살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절벽에 비치는 조명이 플록세나의 얼굴이라는 것을 미리 듣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고 하니 블레드에서 일박을 하게 된다면 눈여겨 볼 일이다. 금발의 젊은 여인의 모습에서부터 나이가 든 노파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2)

필자와 아내 역시 차례를 기다렸다가 줄을 당겼는데, 의외로 쉽지 않아서 처음 당겼을 때는 종소리가 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힘을 내어 다른 사람들처럼 세 번 당겨 종을 울리면서 소원을 빌었다. 물론 그 소원은 이루어질 때까지는 비밀로 할 예정이다. 종을 울리는 사람들 대부분 엄숙해진다. 나름대로는 심각한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런데 배고픈 사정을 몰라주는 남자 친구가 정신을 차리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고 고백한 여행자도 있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닌가 보다.(3) 그것도 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낀다.

섬을 돌아보기에 충분한 자유시간을 얻었지만 가이드의 별도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많았다. 15세기에 고딕양식으로 나무를 조각한 성 모자상이나, 1470년경에 그려진 고딕식 프레스코화, 그리고 1639년에 만든 오르간과 1690년에 만들어진 성 안나 제단 등을 챙겨보아야 했다.

또한 교회 바닥에는 유리로 덮어 발굴된 지하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다. 물론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챙겨보지 못한 나의 잘못이 크다.

티토의 여름 별장이던 빌라 블레드
블레드섬에서 배를 타고 나오면서 왼쪽을 보면 브레드 성을 바라볼 수 있는 호숫가에 멋있는 건물이 서 있다. 호텔 빌라 블레드이다. 유고연방의 대통령을 지낸 티토가 여름별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지금은 호텔로 운영되고 있지만 내부에는 티토의 집무실 등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유고슬라비아 왕족들이 블레드 지역에 별장을 두었던 것처럼 티토 역시 1947년에 이 별장을 지었다. 티토는 블레드의 여름 별장을 휴식공간으로 혹은 친교의 장소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중요한 손님이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하면 이곳에서 영접했던 것이다. 후세인 요르단 왕, 인디라 간디, 일본의 아키히토, 티토의 막역한 친구인 차우체스크가 이곳을 다녀갔다.

특히 빌리브란트(Willy Brand) 독일 총리는 '동방 정책(Ostpolitik)'의 집필을 이곳에서 마무리 하는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티토를 닮으려고 노력을 했던 김일성은 유고슬라비아 방문일정을 예정된 3일에서 14일로 늘려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4) 블레드호수는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김일성과 티토는 살아온 과정도 그렇고 비동맹노선을 같이 하는 등, 철학도 닮은 데가 많았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평양과 베오그라드를 오가며 빈번하게 만날 정도였다. 김일성은 보안상의 이유로 해외순방길에 비행기 대신 기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평양을 떠나 시베리아철로를 이용하여 베오그라드까지 가려면 하세월이었을 것이다.

그런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유고연방의 상당한 지원을 받았던 모양이다. 북한이 보유한 ‘유고급’ 잠수정은 유고슬라비아에서 도입한 설계에 따라 건조된 것들이다.(5)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 아쉬운데, 어렸을 적에 종가집에 놀러 가면 사랑채 마루에 서서 집 앞으로 펼쳐지는 방죽의 모습에 정신을 팔곤 했다. 같은 물을 바라보는 것이지만, 바다를 보는 것과 호수를 보는 것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호수는 어지러워진 마음을 다스리는데 가장 좋은 장소이다. 빌라 블레드 정도는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호숫가에 작은 집을 마련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아내도 동의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블레드섬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블레드성으로 이동한다. 슬로베니아가 독일왕국의 지배를 받던 1004년 독일황제 하인리히 2세(Heinrich Ⅱ)는 브릭센(Brixen)의 주교 알부인 1세(AlbuinⅠ)에게 블레드지역을 봉토로 하사하였다.

당시 블레드 호수가의 130m 절벽 위에는 로마네스크양식의 탑만이 있었다. 중세 말에 성벽을 높이고 더 많은 탑이 건설되면서 요새(要塞)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블레드성은 1918년부터는 유고슬라비아 왕실의 여름별장이 되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이 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시대의 유물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다.

블레드의 성벽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려 조금 올라가면 첫 번째 입구가 나온다. 고딕 아치로 된 바깥 성문을 통과하면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곳은 허술해 보이지만 더 올라가면 만나는 본성의 입구는 절벽 위에 높이 세운 벽에 좁은 문 하나만을 달아내고 있다. 이곳만 지키면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철옹성이다. 성 입구의 반대편은 호수 쪽으로 100m가 넘는 절벽이니 말이다.

블레드성 예배당의 벽화(좌), 박물관에 전시된 암모나이트 화석(우)
블레드에서 바라본 호수(좌)와 트리글라브 국립공원(우)
성안에 들어서면 두 개의 마당을 거치게 된다. 위쪽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에는 앞서 말한 유물들을 전시하는 공간과 예배당이 있다. 예배당은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벽면에 그려진 퇴색된 벽화를 볼 수 있다.(6) 아래쪽 마당에서는 성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데, 블레드 호수에 떠있는 블레드섬이 손에 잡힐 듯하며, 그 왼쪽으로는 아름다운 블레드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반대편으로는 알프스에 있는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트리글라브 국립공원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래마당에서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의 지하에는 대장간을 겸한 기념품 판매소가 있다.

결혼식을 하러 블레드 성으로 들어가는 신랑신부 그리고 하객들
바깥쪽 성채에 올라 성 밖을 내다보는데 성밖 마당 쪽으로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급하게 쫓아가보니 때마침 거행되는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출발을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 결혼식까지는 지켜보지 못했지만, 역시 가을을 결혼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버스를 타고 5시 가까이 되어서야 자그레브로 출발했다. 여행 첫날이라서인지 일행들은 시간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데도 일정관리에 문제가 있다.

자그레브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를 읽는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슬라보예 지젝교수의 글이 실려 있고,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다양한 철학적 시작으로 분석하고 있어 쉽게 읽힐 것 같다는 생각에서 고른 책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지젝교수는 류블랴나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최근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바둑대결을 벌인 알파고가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일으키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 못된 시각이라는 제이슨 홀트교수의 글을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에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7)

참고자료

(1) Cannundrums. 2013. 6. 20. The Church of Mary of the Queen on Bled Island - Slovenia.
(2) 오동석. 크로아티아 여행 바이블, 서영, 2013년
(3) 안정희. 사색하기 좋은 도시에서 46-47쪽, 중앙북스 펴냄, 2015년
(4) 드루가이드. 빌라블레드(Villa Bled).
(5) 이종헌 지음. 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169-172쪽, 소울메이트, 2012년
(6) 드루가이드. 블레드성.
(7) 제이슨 홀트. 인공적인 마음은 가능한가: 기계가 만들어 낸 영혼. (슬라보예 지젝 등 지음.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192-207쪽, 한문화,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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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일방적 발표였으니, 재논의도 아닌 거고, 노력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다 퉁쳤네. 추진 안 한다가 아니라 강행하지 않는다니,
    (현 정부 꼬락서니를 보면, 관변어용시민단체 다수 동원해, 국민뜻이라며 언론플레이후, 스리슬쩍 통과. 보나마나 '강행'은 아니라겠지.)
    정부 입장에서 도대체 뭐가 양보? 의사는 복귀하도록 노력한다가 아니라 복귀한다고. 욕먹고, 파업한 결과가 참,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의약분업때 당해놓고, 또 당하네. 일단, 코로나 넘기고, 재논의하자. 노력하자.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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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일방적 발표였으니, 재논의도 아닌 거고, 노력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다 퉁쳤네. 추진 안 한다가 아니라 강행하지 않는다니,
    (현 정부 꼬락서니를 보면, 관변어용시민단체 다수 동원해, 국민뜻이라며 언론플레이후, 스리슬쩍 통과. 보나마나 '강행'은 아니라겠지.)
    정부 입장에서 도대체 뭐가 양보? 의사는 복귀하도록 노력한다가 아니라 복귀한다고. 욕먹고, 파업한 결과가 참,

  • heef*** 2020.09.00 00:00 신고

    먹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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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진'강행'은 안해주마. 애초에 논의한 적 없이
    일방적 발표였으니, 재논의도 아닌 거고, 노력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다 퉁쳤네. 추진 안 한다가 아니라 강행하지 않는다니,
    (현 정부 꼬락서니를 보면, 관변어용시민단체 다수 동원해, 국민뜻이라며 언론플레이후, 스리슬쩍 통과. 보나마나 '강행'은 아니라겠지.)
    정부 입장에서 도대체 뭐가 양보? 의사는 복귀하도록 노력한다가 아니라 복귀한다고. 욕먹고, 파업한 결과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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