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를 여행한다는 것의 묘미는 바로 예정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 가운데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바로 그 시간, 그리고 그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인연들. 10초만 어긋났더라도 못 만났을, 아니 어쩌면 5미터만 더 멀리 스쳐 지나갔어도 만나지 못 할 수 있었던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잊지 못할 추억들이야말로 여행에서 얻는 가장 소중한 보석들이 아닐까?
시차 적응도 덜 되고 전날에 많이 돌아다녔던 탓인지 근육도 결리고 약간의 두통도 동반되었던 뉴욕 호스텔에서 맞이한 세 번째 아침, 그날은 필자에겐 있어선 다시금 소소한 인연을 만들어간 바로 그 시간, 그리고 장소였다.
호스텔에서 제공되는 아침을 먹기 위해 조금 일찍 들어간 식당에는 이미 백인 여자 한명과 동남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남자 한명도 아침식사를 막 준비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미 친해졌는지 둘 사이는 벌써부터 다양한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다. 배낭여행객들끼리 나누는 이런 대화 자리가 아직 어색했기에, 통상적으로 인사하는 'Good Morning'을 하고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백인 여자가 나에게 다양한 질문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얼마나 미국에 있을 건지, 사소한 질문들로 시작된 짧은 대화들이 오가는 가운데 어느새 그들의 대화 자리에 필자도 합류하게 되었다.
백인 여성은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진 20대 대학생 D였다. 공교롭게도 내가 곧 가게 될 플로리다(도시는 다르다.)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마침 방학기간이라 잠시 틈을 내어 뉴욕으로 여행을 왔다는데 그 날 아침부터 뉴욕의 명소를 돌아보려고 계획을 짜고 있던 차에 필자와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 옆에 있던 아시아인 남자 A는 갓 30살을 넘겼고, 싱가포르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평소에 미국을 와 보고 싶었는데 역시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뉴욕에서 Ball Drop(우리나라의 보신각 종처럼, 뉴욕에서는 타임 스퀘어에서 새해 시작에 맞추어 공을 떨어뜨리는 행사를 진행한다.)를 보고 여행하기 위해 이 시기에 맞추어 여행을 왔다고 했다.
마침 D와 가고자 하는 곳이 비슷하여 서로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필자의 일정은 어떤지 물어왔다. 그리하여 그날 하루는 이 두 친구들(30대한테 친구라 부르는 것은 약간 하극상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나이 개념이 별로 없는 외국에서는 마음만 통한다면 누구나 친구가 된다.)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오전에는 뉴욕을 갔다면 놓칠 수 없는 자유의 여신상과 뉴욕 미술박물관 관람을 하고 저녁때는 전날 미루어두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뉴욕의 화려한 야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어쩌면 필자 혼자서는 용기가 안나 못 갔을 할렘 지구도 이 친구들 덕분에 갔다 오기도 했다.
이런 친구들과 여행하다 보면 간혹 연락 수단을 무엇으로 해야 하는 지 난감할 때가 있다. 미국에 가기 전, 카카오톡이 세계에서 상용되고 있다고 믿고 나간 필자로써는 이걸 모르는 나머지 두 친구들의 말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오히려 그 나라들에도 그들이 이용하는 카카오톡과 같은 수단이 있었다. 미국 전화도 개통을 안 한 상황이라 결국은 조금 원시적이긴 하지만 서로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자고 합의하고 잠시 따로 떨어질 일이 있을 때 다음은 어디서 만날지, 망망대해 뉴욕에서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그렇게 연락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모국어도 다르고 사고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건 그 기저의 깔려있는 사람의 본능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해본다.
통하고 공감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은 아닐까? 분명 어제와 같은 뉴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기가 넘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오늘의 그곳은 어제의 그곳과 달랐다.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안아주고 배려해주고자 했던 모습들 속에서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선함을 볼 수 있었다. 만일 가져야 한다는 의료인의 자세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선함을 풍길 수 있는 그런 자세를 조금이라도 배운 것이 바로 교환학생기간동안 필자가 얻은 최고의 선물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미 전초지인 뉴욕에서 여러 사람들을 통해 선물들을 받았다. 이 선물 보따리를 안고 드디어 새해 전날, 이제는 진짜 목적지인 세계 화합의 상징, 뉴욕의 UN 본부 플로리다 탬파로 필자의 발은 옮겨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