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의학자들이 주축된 대한암협회 초대 회장을 맡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대한암협회(회장 노동영)가 8일 발간한 '암 예방과 극복, 그 열정의 반세기-대한암협회 50년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1960년대 매년 3만명이 암으로 사망하면서 국민들에게 암은 곧 죽음으로 인식되는 공포의 질병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암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찾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지어 암이 병균과 바이러스에 의한 병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암 관련 의사들이 암에 대한 대국민 계몽 운동 필요성에 의기투합해 암협회 탄생 시동을 걸었다.
서울의대 산부인과 과장을 역임한 김석환 중앙병원 원장을 위원장으로 연세의대 외과 민광식 교수와 경희의대 방사선과 안치열 교수, 서울의대 내과 이문호 교수, 서울의대 외과 진병호 교수, 연세의대 산부인과 황태호 교수, 한국일보 심승택 과학부장 등이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금은 해당 의과대학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기라성 같은 의학자들이 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민간단체 설립에 뜻을 함께 한 셈이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협회 정관까지 제정했지만 대국민 예방과 계몽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언론 홍보와 재정지원이 필요했다.
김석환 위원장을 비롯한 준비위원들은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을 찾아갔다.
당시 삼성그룹은 중앙일보와 동양라디오, 동양텔레비전 창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암 극복을 위한 의학자들의 뜻에 마음을 움직인 이병철 회장은 지원을 수락했고, 1966년 보건복지부(당시 보사부)로부터 재단법인 암협회 설립인가를 받아 4월 9일 대한의학협회 대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에서 초대 회장이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을 선출했으며 김석환 원장은 부회장, 민광식 교수는 총무이사 등 의학자들이 이사진을 맡았다.
이병철 회장은 1966년부터 1973년까지 매년 50만원씩 후원해 창립 2년차 400만원, 1976년 1100만원, 1984년 3900만원 등 암협회 성장에 디딤돌 역할을 했다.
당시 진료비를 살펴보면, 이병철 회장이 후원한 액수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1966년 서울대병원을 기준(특진 제외)으로 위암 진찰권은 100원이며 피, 위 사진 등 검사료 5000원, 입원비 최소 12일 3600원, 수술비 1만 2000원, 약값 1만 5000원 등 진단과 입원, 수술에 총 5만원이 들었다.
간암의 경우, 동위원소 검사와 담낭 X선 사진 등 진단 1만원, 입원비 한 달 9000원, 수술비 3만원 등 총 12만원으로 암 수술 중 가장 많은 비용이다.
암협회 노동영 신임 회장(서울의대 외과 교수)은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은 초대 회장으로 암협회 창립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면서 "다시 삼성그룹을 찾아가 과거와 달라진 암협회 역할과 중요성을 알리고 도와달라고 부탁하겠다"며 삼성과 인연을 소중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