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보건복지부 세종청사 5층 대회의실에 공무원 250여명이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복지부는 지난달 첫 혜민 스님을 시작으로 '창조와 인문학' 주제 전 공무원 대상 외부초청 강연을 진행 중이다.
이날 강연자는 문화방송 '무한도전' 연출자인 김태호 PD.
예능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무한도전 연출자를 보기 위해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마다하고 남녀 공무원들이 운집한 것이다.
김태호 PD는 무한도전 지난 10년간의 희노애락과 비 하인드 스토리를 진솔하게 설명하면서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100분 강의를 이어갔다.
기자도 무한도전 애청자다.
평균 이하 연예인들이 좌충우돌하며 '무모한 도전'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주간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있다.
김태호 PD는 강연을 통해 유재석과 노홍철, 정형돈 등을 시작으로 정준하, 박명수, 하하 등으로 멤버를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숨겨진 어려움을 소개했다.
프로그램 시작 전 방송사 간부들은 유재석을 제외하고 지명도가 낮은 인물에 우려감을 표하면서 안성기와 이계인 등 유명 연예인을 주문했지만, 김 PD는 원안대로 밀어붙였다.
무한도전은 '국민 MC'로 불리는 유재석을 중심으로 출연진 모두 각자의 캐릭터를 형성하면서 수많은 유행어와 번뜩이는 아이디어 등 재미와 감동으로 높은 시청률을 유지한 채 최장수 예능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샌드위치와 김밥으로 점심을 대신한 강연 시간 내내 참석 공무원들은 귀를 쫑긋 세운 채 김태호 PD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시선을 집중했다.
관료주의 대명사인 공무원들이 그의 강연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TV에서 보던 유명인을 본다는 단순한 호기심 보다 매주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하는 아이디어 기획 과정과 출연진 중도탈락 아픔, 시청률 부담감 등 10년 간 우여곡절을 지탱한 비법을 궁금해 했다.
복지부 공무원들도 어찌 보면 보건복지 정책의 연출자이다.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 어떤 정책을 내놓든 다양한 직역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상황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선의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기에 실국장의 뜬금없는 지시와 언제부터인가 보건복지부를 마구 두드리는 기재부와 감사원 그리고 저 넘어 절대 권력으로 불리는 청와대까지.
극단적 표현하면 젊은 공무원들이 소신을 갖고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한 공무원은 "김태호 PD 강연을 듣고 많은 것을 느꼈다. 여론에 보건복지정책 성과가 좌우되는 것처럼 시청률에 목을 매는 예능 방송에서 자기 소신을 지속할 수 있는 배짱과 자신감이 부럽다"면서 "출연자 중 비난을 받거나 중도 탈락해도 믿고 기다려주는 것처럼 아래 사람을 존중하고 외풍을 막아줄 수 있는 복지부를 원한다"고 전했다.
다른 공무원은 "10년을 지속 중인 무한도전 원동력이 연출자와 출연자들의 상호 신뢰와 존중 그리고 리더십에 있는 것처럼 정책 입안과 추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공무원들에게 이날 강연은 청량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유·무선으로 보고만 받고 있는 복지부 장차관과 실국장들은 세종청사로 매일 출근하는 700여명의 공무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김태호 PD 강연에 왜 매료됐는지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