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촉발된 '화학 물질 포비아'가 티슈 등 가정용 제품을 넘어 세척·소독액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분으로 지목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성분이 비슷한 염산폴리헥사메틸렌비구아니드(PHMB)가 렌즈세척액과 내시경 소독액 등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것.
소독액 업체들은 PHMB 자체를 인체 무해한 안전한 살균소독제로 소개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용량과 용법에 따라 위해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며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19일 내과와 검진 병의원 등에 따르면 내시경 소독액 중 염산폴리헥사메틸렌비구아니드(PHMB)가 포함된 제품이 유통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명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된 성분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HMG),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 등이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독성을 지닌 물질이 바로 PHMB다.
A사의 내시경 소독액은 PHMB와 DBAC(알킬디메틸 벤질 암모늄 클로라이드)를 주 성분으로 하고 있다.
PHMB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 '기구 등 살균소독제'로 허가받고 미국 FDA에서도 기구 소독 용도로 승인받았다.
살균소독제로는 안전성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만큼 A사 역시 "본 제품은 미 식품의약국(FDA)과 미 환경청(EPA) 등록을 얻었고 식품의약품안전청(KFDA)의 식품첨가물로 등재된 성분으로만 구성돼 있으므로, 인체 무해한 안전한 살균소독제다"고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FDA가 인정한 식품첨가물용 혼합제제의 PHMB 및 DBAC 특수 양이온성 살균소독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인체에 무해하고 환경 폐수 영향도 없다는 게 업체 측 주장.
반면 유럽과학자문위원회(SCCS)는 쥐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PHMB의 흡입시 사망(Fatal if inhaled)과 삼키는 경우 위험(Harmful if swallowed)을 경고하고 있다.
PHMB의 사용 용량과 용법, 적정 소독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내시경에 PHMB 성분이 그대로 남아있을 경우, 내시경을 통한 PHMB의 흡입이나 신체 흡수에서 위해 가능성이 내포돼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재욱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FDA가 인정하고 허가를 했다는 것이 그 물질 자체가 완전히 무해하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며 "FDA 승인의 뜻은 특정 농도, 특정 용량·사용방법 등을 전제로한 제한적인 안전성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시 말해 정해진 용도대로 소독액을 사용하지 않거나 과용량을 쓰는 경우, 내시경에 소독액이 남아있는 경우는 위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FDA 승인 등을 근거로 물질 자체를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밝혔다.
위장내시경학회도 PHMB 관련 소독액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창영 위장내시경학회 회장은 "내시경 자동세척기를 사용하는 경우 PHMB 계열 소독액을 사용해도 별도의 헹굼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잔류 성분이 빠져나간다"며 "다만 수동으로 세척하는 경우는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동세척기 없이 수동으로 소독하는 의원급 기관은 세척액의 용량과 용법을 잘 지켜야 한다"며 "헹굼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는 잔류 성분이 남아있을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학회 차원에서 적정 소독액 사용 용량 등 적절한 소독 방법을 매번 안내했다"며 "옥시 사태로 PHMG 계열 제품의 위해성이 이슈가 된 만큼 학회에서도 PHMB 포함한 내시경 소독액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 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