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생애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있다. 격동의 시기다. 그의 유년시절에 미국이 독립했고, 1788년 독일 튀빙겐대학에 입학한 후 2학년 때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 1805년에는 괴테의 추천으로 예나대학 원외교수가 되었고, 이듬해 나폴레옹이 직접 예나대학을 점령하는 광경을 숙소에서 지켜보았다.
1년 뒤에는 증기선이 발명되는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었고 얼마 후 나폴레옹의 몰락을 목도했다. 한 나라가 영원히 다른 나라의 주인이 될 것처럼 보이더니 이내 위치가 뒤바뀌었고, 귀족과 부르주아, 농노로 나뉘는 신분체계가 무너지는가 싶더니 자본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런 시대적 환경은 헤겔로 하여금 변증법의 보고(寶庫), 정신현상학을 완성케 했다.
정신현상학에 소개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헤겔에 따르면 "주인과 노예의 위치가 바뀌는 것은 자기반성의 결과다. 주인은 노예의 자유를 대신해 행사한다. 반면 노예는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속박을 인정하고 주인이 향유할 생산을 최대 과제로 여기며 봉사한다. 주인에게 인정받아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어느 날 노예는 자신이 만든 생산물인데 자신이 소비할 수 없다는 데 의심을 품는다. 노예는 서서히 스스로 자립적인 존재라는 자기반성을 한다."
주인에게도 자기반성의 기회는 주어진다.
"주인은 노예의 섬김과 찬사 속에 편안함을 영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스스로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노예로 가득 찬 주변에서는 자신을 객관화할 대상을 찾기 어렵다. 자기보다 열등한 사람으로부터 받는 인정은 제대로 된 인정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다. 주인은 스스로 자립과 자유를 상실하게 되고 이러한 자기반성의 진리가 알려지면 주인과 노예가 상호 전환된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독일의 변화를 요구했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개인 단위의 신분 종속이나 조직체계상 상하관계를 넘어, 변화의 무대가 프랑스를 떠나 자국 독일로 향하고 있었다. 세계를 향해 엄중한 대결 자세를 가지자는 헤겔의 대국민 호소였다.
품삯은 시간 점유의 보상인가
200여 년이 지난 현대에도 개인적, 조직적, 국가적 주노(主奴)관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주인의식이라는 말이 있다.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의식의 출발점은 주인이 아님을 전제로 한다.
사장이 직원에게 '내 것처럼 하라'는 말은 주인이니 할 수 있는 말이다. 직원은 소유권이 없으니 그럴 수 없다고 느낀다. 사장은 직원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모두가 주인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한을 이양하고 책임과의 균형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사장은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조심해서 사용한다. 권리를 나누지 않은 채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부작용을 낳는다. 주인이 아닌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도 오해를 부른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논리를 깨치지 않는 한 주인의식을 갖기 어려운 이유이다.
전문직은 사업자로 개업하지 않는 한 피고용인으로 생활하는 고급직군이다. 국공립기관이라면 국가, 사립기관이라면 사장과 고용계약을 한다. 총장, 대학병원장, 학장은 조직의 수장이지만 소유권을 가지지 않는 한 다른 교원과 신분은 같다.
필자는 경영자문 중에 변증법에서 말하는 자기반성을 거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만난다. 자기의식으로 무장하고 스스로 주인이라 생각하는 임직원이 있는 반면 이사장임에도 마치 법인을 폐쇄하려는 듯 자포자기인 사람도 있다. 조직과 나를 바라보는 관점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직원에게 가혹한 일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주인의식이라는 말뿐만 아니라 주인이라는 단어도 조심한다.
시간에 점유당하는 것이 급여와 안정감의 대가라는 모 선생의 이야기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따금 자기 생활에 만족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 선생 같을 분을 만나면 필자의 도전정신이 무뎌지기도 한다.
필자도 조직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직급이라는 것이 생기니 품삯에 길들여지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엄밀한 자기반성을 거치고, 정신의 야성을 되찾기 위해 조직에서 나왔다.
필자의 경우 두 번의 뼈아픈 자기반성을 기억한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주인과 노예의 경계는 소유권이 아니라는 것을. 나보다 많이 아는 선후배를 통해 배우고 내 것으로 자산화하고 다시 물려주는 것이 지식인의 모습이다.
조직이 적합하다면 그곳에 있으면 되고, 자립이 길이라면 밥을 굶더라도 나와야 한다. 들판의 황량함이 두려워 시간 강탈을 인정하는 삶은 죽은 삶이다. 안전한 삶도 아니요, 정당한 품삯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혹자는 국가를 위한다는 대의 때문에,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조직에 있다고 한다. 학문적 조예가 깊은 대가(大家)와 함께하는 기쁨 때문에 급여가 적어도 조직생활을 한다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보람이다. 이들은 이미 주인이다.
계급장 뗀 후 나의 브랜드는?
앨버트 허시먼은 조직을 거부하는 사람을 명쾌하게 구분한다. "조직이 싫은 사람은 반드시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떠나거나, 항의하며 변화를 꿈꾸거나, 묵묵히 견딘다."
조직을 떠난 사람은 불안감에 평일 대낮에도 길거리를 활보하지 못한다. 그리고 명함부터 찾는다. 새 조직으로부터 새 명함을 받으면 그제야 안도한다. 급한 마음에 준비 없이 조직을 설립한 자도 명함은 파고 싶다. 그러나 이내 삶의 무게가 얄팍한 명함 한 장도 안 될 정도로 가볍게 느껴진다. 계급장을 떼어내면 남는 것은 이름 석 자뿐이다.
예비 의료인이 스타트업이 힘든 전공을 택했다면 그건 학문적 성향 때문이지 노예근성과는 무관하다. 지원인력과 장비 인프라가 필요한 과목이라면 소속감과 팀워크가 주인으로 만들어준다. 지금 모습이 경영철학자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같건, 벼룩을 지향하건 중요하지 않다.
훌륭한 소속기관명에 묶여, 전문자격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부양가족을 핑계로 내 시간을 저당잡힐 직업을 선호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다. 계급장 떼고 사막에 들어간들 내가 가질 브랜드가 있다면 조직에 속해 있건 자기사업을 하건 이미 주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