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산후조리를 위해 한의사 남편이 지어준 한약을 먹었다가 신장이식까지 받게 된 아내가 한약재를 만드는 제약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제약사가 신장을 망가트리는 성분이 들어있는 한약재를 넣어 한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 제35민사부는 최근 신장이식을 받은 환자 이 모 씨가 S제약과 N제약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유지했다.
1심은 제약사들의 책임을 70%로 제한하고, 환자측에 2억1222만원의 금액을 배상하라고 했다. 제약사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이 판결을 확정됐다.
이 씨는 산후조리를 위해 2~3개월 동안 한의사 남편이 처방한 한약을 먹었다.
한의사 남편은 통초 120g이 들어있는 중귀초혈음 한약처방전, 통초 400g이 들어있는 통유탕 한약처방전, 통초 80g이 포함된 궁귀조혈음대영전가미 한약처방전을 한약국에 보내 한약제제 제조를 부탁했다.
이 한약국은 S제약과 N제약에게 산 '통초'라고 된 한약재 규격품을 사용해 한약제제를 만들었다.
문제는 이 한약재 규격품에 있었다. S제약과 N제약이 만든 한약재 규격품에는 통초가 아닌 '등칡'이 들어있었다.
등칡에는 신독성성분인 아리스톨로킨산이 들어있다. 아리스톨로킨산은 신조직에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고, 투여용량에 따라 간질성 유효 동반 만성신부전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아리스톨로킨산 함유 한약재는 비뇨기계통에 암을 발생시킬 수 있는 인체 발암물질로도 분류돼 있다.
등칡이 들어있는 한약을 먹으며 산후조리를 하던 이 씨는 발열, 구역, 구토 등의 증상으로 동네의원을 찾았다 대형 병원으로 전원됐다.
그 결과 사구체 여과율 6으로 신세뇨관 괴사를 동반한 급성 신부전, 말기 신장질환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신기능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이 씨는 결국 신장 이식을 받았다.
이 씨는 신장기능 상실로 인한 발열, 구토 등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신장질환 과거력이 없었다. 임신 기간과 출산 직훈 시행한 소변검사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이 씨는 "N제약과 S제약은 한약재를 제조, 판매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한약재로 사용할 수 있는 통초와 등칡을 명확히 감별해야 함에도 게을리해 등칡으로 약재 규격품을 제조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등칡 때문에 이 씨의 신장이 망가졌다고 봤다.
재판부는 한국식품영양과학지, 한약재 관능검사 지침을 비롯해 서울의대 내과학교실에서 대한내과학회지에 보고한 한약관련 신병증(CHN, Chinese herb nephropathy) 관련 논문과 경희의대 내과학교실에서 대한신장학회지에 보고한 논문 등을 참고했다.
이 씨 주치의도 임박한 말기 신장질환으로 CHN 의견을 표명했다.
주치의는 "신조직 검사 결과 매우 심한 신기능 저하와 세뇨관 간질 섬유화가 진행됐음에도 사구체 부위는 비교적 보존되는 특이한 경우로 CHN, 특히 아리스톨로킨산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소견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도 "이 씨는 2~3개월 동안 아리스톨로킨산이 들어잇는 한약재로 만들어진 한약제제를 복용한 후 세뇨관 간질 부위 손상으로 인한 만성 신부전 질환이 생겼다"며 "이는 아리스톨로킨산이 함유된 약재를 복용했을 때 발생하는 특이성 질환인 사실 추인이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한약재의 외형, 성상, 감별방법, 구별해야 하는 극약 및 독약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 연구해 의약품 규격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위험을 제고하고 최소화해야 하는 고도의 위험방지 의무가 있다"며 "한약재 감별 기준조차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성 성분 때문에 유통이 금지된 등칡으로 한약재를 제조해 통초의 한약재 규격품인 것처럼 유통시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