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UDI(고유식별코드) 시스템’이 자칫 치료재료 가격인하 기전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27일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의료기기 UDI 시스템(의료기기통합정보시스템) 공급내역을 통해 ‘공급금액’과 ‘공급단가’를 보고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정부가 환자 안전관리 실현이라는 당초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치료재료 실거래가 조사를 통한 가격인하 툴로서 의료기기 UDI 시스템을 악용하겠다는 것이라며 공분하고 있다.
논란은 식약처와 복지부가 참여하는 의료기기 UDI 관련 실무협의체 회의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앞서 식약처와 복지부는 2016년 9월 부처 간 업무조정을 통해 의료기기 유통정보 수집을 식약처가 담당키로 합의했다.
다만 유통정보 수집 시 의료기기 수량·공급단가 및 계약 방법 등 복지부 업무 수행에 필요한 유통정보가 함께 수집되도록 식약처가 법령을 제·개정키로 했다.
식약처는 또한 복지부가 업무수행에 필요한 유통정보에 실시간 접근 가능하도록 의료기기 법령을 명문화하고 관련 시스템을 구축키로 했다.
더불어 의료기기 UDI 기준은 식약처가 주관하되 복지부와 합의해 제정·운영토록 법령으로 명문화하기로 합의했다.
식약처와 복지부는 이 같은 합의사항을 논의하고자 각각 산하기관인 의료기기정보기술지원센터·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리고 지난해 9월 28일 첫 실무회의를 가졌다.
이후 지난해 11월 협의체 2차 회의부터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등 업계가 참여하기 시작했고 지난 12일 5차 회의까지 열렸다.
복지부는 2차 회의 때 공급내역 보고 시 공급금액과 공급단가를 기재토록 하는 방안을 업계에 처음 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협의체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복지부·심평원은 2차 회의 때 회의 자료로 의약품 공급내역 보고 양식을 내놓으며 이를 벤치마킹해 의료기기 UDI 시스템에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심평원은 이후 3·4·5차 회의까지 공급내역에 공급금액·단가를 보고토록 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업계는 2차부터 5차 회의 때까지 공급금액·공급단가 보고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다”며 “하지만 복지부·심평원은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를 내세워 (치료재료) 가격 인하 기전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협의체 회의내용이 비공개였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공론화할 수 없었다”며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지난달 28일 협회 운영위원회를 통해 이를 알리고 지난 12일 이사회 회의를 통해 대응방안을 모색하게 됐다”고 밝혔다.
업계는 이 같은 복지부 추진 방안이 알려지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다국적기업 한 관계자는 “의료기기 UDI 도입은 일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을 막고 신속한 리콜과 함께 전주기적 의료기기 추적관리로 환자 안전관리를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다”며 “정부가 공급금액과 공급단가를 보고하라는 건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치료재료 가격 인하 기전으로 악용하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대리점 일부 사장은 정부가 유통단계별로 치료재료 단가를 조사해 가격을 통제한다면 사업을 접겠다는 말까지 할 정도”라며 “업계 반발이 커지면 오는 11월 의료기기 UDI 시범사업은 물론 2018년 제도시행에도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역시 의료기기 판매 시 발행하는 거래명세서 단위별로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공급금액·공급단가를 공급내역으로 보고토록 하는 복지부 추진방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일 통과된 의료기기법 일부개정안에서 의료기기통합정보시스템과 관련해 의료기기제조·수입·판매·임대업자가 의료기기를 공급할 때 공급내역 보고를 식약처장에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공급내역 세부항목으로 공급금액과 공급단가 보고 내용은 없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지난해 7월 20일 김승희 의원실에서 주최한 ‘의료기기 국민안전 확보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도 관련 내용이 전혀 언급된 적이 없었던 만큼 반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협회 관계자는 “복지부·심평원은 치료재료에 대한 실거래가 조사를 통한 가격 인하 등 사후관리에 활용하고자 의약품 공급내역 보고 사례를 들어 의료기기 UDI 시스템 공급내역에 공급금액·단가 보고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기기통합정보시스템 관련) 의료기기법 개정 취지는 의료기기 유통현황 파악을 통한 부작용과 재사용 등 문제 발생 시 신속한 추적 및 회수·폐기 등 사후관리를 위한 것으로 복지부·심평원이 주장하는 공급금액 보고는 상위법에서 위임된 권한범위를 넘어서는 항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전체 의료기기 약 2600개 품목 중 공급금액 필요성이 요구되는 치료재료 비율은 약 5%에 불과함에도 의료기기제조·수입업체 5865개소 및 판매·임대업체 5만1219개소에 거래명세서를 매건 확인해 공급금액 보고를 의무화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의료기기통합정보시스템 구축 후 제품별 정보등록 시 현재 의료기기 생산·수출·수입실적 보고 시 작성하는 평균단가를 기재토록 해야 한다”고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협회는 제도개선 관철을 위해 대정부 활동을 펼치고 의료기기단체와 공동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협회에 따르면, 지난 18일 국무조정실과의 간담회에서 업계 애로사항을 적극 알리는 한편 지난 24일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대한치과기재산업협회 대한의료기기판매협회 단체장과도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4개 단체장들은 복지부 추진방안이 의료기기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다만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은 내부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사안인 만큼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데 난색을 표했다.
4개 단체장들은 조합 이사회 의결내용에 따라 향후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키로 합의하고 회동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