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연재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리더십'이 미래 인재를 향한 목소리였다면, 이번 연재의 대상은 사람이 아닌 병원입니다. 지속가능성과 실행(sustainability and implementation)이라는 주제를 놓고 병원경영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큰 병원에서 작은 병원까지, 단일 병원에서 다(多)병원체계까지, 세대를 흘러 개원하고 운영하고 문을 닫는 경영의 행위 속에서 병원경영의 연속성 확보란 여전히 어려운 주제입니다.
병원마다 저만의 도시가 있습니다.
대도시 병원에 행정구획이 나뉘듯, 산간지역 병원에게 산이란 저만의 도시요. 도서지역 병원에게 도시는 섬 그 자체입니다. 무궁무진한 힘과 자원이 있음을 느낍니다. 그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해내고, 기록하고, 잊히지 않을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헬스케어 매니지먼트(Healthcare management)라는 역사의 시선이어야 할 것입니다.
병원과 함께한 시간 속에, 인위적인 지역적 한계가 지워지고 앞으로의 병원이 과거의 병원을 넘어설 역량을 갖추기 바랍니다. 이것이 '병원경영의 시선'의 미션입니다. 점진적 도약은 모험입니다. 과거 일상이었던 성장의 시간을 다시 한 번 경험할 때입니다.
고주형의 '병원경영의 시선'
(2) 병원의 경쟁과 병원전략의 품위.
병원 업(業)을 진화시키는 도구, 전략
전략(戰略)은 군사 용어로, 전쟁을 이끌어가는 방법과 책략을 말합니다.
오늘날 병원운영에서 전략은 경영의 필수요소이고, 우위를 점령하기 위한 변치 않는 원칙입니다.
전략을 수립한다는 것은 어느 집단에 파고들 것인가 하는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병상수와 의료진, 의료장비가 동일해도, 인구 백만 이상 대도시 병원의 경쟁전략과 몇 만 명이 넓은 지역에 분포한 병원의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지역에 같은 역량을 가진 병원이라도 주변 상황 변화에 따라 전략은 시차를 두고 변해야 합니다.
병원 경영진이 경영전략을 실행하는 데에는 유연성이 요구됩니다.
유연성은 최초 수립한 전략을 숙성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환경변화에 대응한 창발적 전략이 핵심일 것입니다. 전략은 항상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병원경영에도 업의 진화에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전략과 함께 지나는 시간과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클리브랜드클리닉의 지속가능 전략
4개월 전, 미국 오하이오 클리브랜드 클리닉 본 캠퍼스에 암센터(Taussig Cancer Center)가 문을 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클리브랜드 클리닉은 다병원체계 전반의 위상이나 심장 등 특정 장기, 질환에 대한 역량은 전미 최상급입니다. 그러나 암센터만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코스그로브 원장(Toby Cosgrove, M.D., CEO)에 따르면, 자연친화 트렌드에 부합하는 시설임은 물론이고, 앞으로 암 외래진료는 모두 이 건물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환자경험 차원에서도 개선을 기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건축비, 바로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3천억 원의 재원 확보 전략입니다.
코스그로브 원장은 암센터 건물 골조가 올라가기 전부터 개원전략과 함께 다병원체계 전반의 비용 효율화전략을 추진해왔습니다.
쥐어짜는 원가절감 차원에서 탈피한 모습입니다. 지출의 명분이 명확한지, 그 일을 가장 잘 아는 실무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고, 외주업체 선정 프로세스를 개선하여 재정 효율을 기했습니다. 특히 2010년부터는 'My Two Cents(의견 제안)'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원의 자발적 합의를 이끌어 낸 점이 돋보입니다.
장기간에 걸친 재정 건전화의 결과는 암센터 건축비 규모를 지불하고도 남을 정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원가율을 낮추는 코스트 리더십 전략(원가우위)과 서비스 질을 높이는 차별화전략은 추진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의 경쟁전략의 틀을 빌려 말하자면, '하지 않을 행위(불필요한 지출)의 선택'에 적중했고 오히려 암외래 부문에서 집중화전략이라는 덤까지 챙긴 성공적인 전략 실행으로 판단됩니다. 병원 구성원에게 비용절감 책임을 전가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으니 그 또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정부지원금에도 불구하고 자부담 부족으로 개원 후 재정안정화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우리나라 국공립의료기관의 현실과 대조적입니다.
모방을 통해 이미 다른 병원이 선택한 전략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병원이 자주 보이는데, 이는 병원을 극단적인 무방비 상태로 몰아넣기 쉽습니다. 전략 수립이란 해야 할 선택과 하지 않을 선택, 그 자체를 선택하는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병원전략의 품격을 찾아야 할 때
과거 미셸 오바마가 말한 “When they go low, we go high(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는 내 위치에서 닻을 내리고 주변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병원 전략의 품위란 의료기관으로서 뜻을 세우고 어려움 속에서도 품격을 지켜내는 것에서 비롯할 것입니다.
김위찬과 마보안이 말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상생입니다. 포터의 경쟁전략 역시 경쟁자를 이기는 전략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요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병원의 풍경이 있습니다.
모방(me-too)전략이 일반적인 목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우수의사를 스카우트했다거나 고가장비를 들여왔다며 환자 확보에 열을 올리는 홍보까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무지에 의한 의료사고, 정권에 따른 병원정책의 변경은 편협한 경쟁전략이 난무하는 병원경영의 모습입니다.
불치성 소아환자의 웃음을 되찾는 것이 밤샘의 대가가 되는 것은 생명을 다루는 병원의 업무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위 '격'이 떨어지는 병원이 자꾸 나타나게 되면, 의료행위 그 자체가 의료인의 높은 자존감로 귀결되는 시대는 서서히 짧아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의료계는 전대미문의 경쟁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남다른 준비가 필요하고, 전략을 통해 '나'와 '조직'이 할 일을 실감 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병원전략체계도(Strategy map)는 나와 우리 병원이 서로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고, 힘든 일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관의 방향(Vision)은 내가 원하고 지역사회가 원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병원전략의 품위입니다.
고주형 대표는
국내외 병원과 다병원체계(Health System)의 성장전략과 지속가능방안 자문을 업으로 삼고 있다.
코넬대학교(미국 뉴욕), 대학원에서 보건의료정책·의료경영학 석사(M.H.A.)를 취득했으며, 美공인회계사다.
삼일회계법인과 미국 FTI Consulting Inc.의 FTI Healthcare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헬스케어 경영컨설팅회사 캡스톤브릿지의 대표 컨설턴트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의대 본과생에게(What they didn’t teach you in med school, 2015, 고주형)>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