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으시기 전에 이 글에는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에 대한 스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이 영화는 두뇌가 명석한, 특히 수학에 능한 흑인 소녀 캐서린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흑인이지만, 흑인 최초로…" 등의 대사는 이 영화가 아직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철폐되지 않은 옛날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 소녀가 커서 어떤 인물(figure)이 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교사의 말처럼 이 아이는 심상치 않은 인물이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마주한 현실에서는 투명한 유리천장도 아닌 인종차별이라는 답답하게 꽉 막힌 콘크리트 벽 하나가 그녀를 막고 있었다.
계산에 능하다는 엄청난 특기를 가지고 미국의 나사(NASA)에 취직하게 되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그러나, 첫 출근을 하는 날 도로에서부터 차별을 마주한다.
그 정도 차별쯤은 이제껏 당해온 것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유머러스하고 여유 있게 대처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직장에서 마주하게 될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우주로 인간을 처음으로 보내겠다는 미국의 전 국민적, 국가적 염원을 담아 나사에서는 오직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능력이 중시되는 곳에서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능력보다 더 우선시되었다. 하지만 뛰어난 능력을 인정 받아 오직 백인들만 근무하는 부서에 배정 받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는 불편하고 힘들고 외롭지만 홀로 분투하며 재능을 빛낸다.
그녀에게도 아이들이 있고, 사랑하는 남자가 있지만 이 영화는 유색인종으로서 차별에 직접적으로 철폐를 부르짖기 보다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으로 백인들로 하여금 본인을 인종을 떠나 능력 있는 인재로서 받아들여 지도록 노력했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그 면모를 인정해주는 상사를 만나게 되고, 강인한 의지와 특출난 자신감, 정확하고 빠른 계산 능력으로 나사의 여러 묵직한 프로젝트들에 큰 기여를 하여 최근 그녀의 이름을 딴 건물까지 설립하게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히든 피겨스'라는 제목처럼 그녀는 숨겨진 숫자정보들에서도 행간에 생략된 의미를 파악할 줄 알며,
그녀 외에도 유색인종이지만 능력을 키워 나사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숨은 인물들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당대 미국사회는 모든 것에 차별을 조장하는 요소들이 존재했다. Colored restroom, colored coffee maker, colored computer… 이것은 구별이 아닌 차별을 위한 것이었고 모두를 얼굴색으로 구별 짓게끔 만들었다.
나사의 프로젝트가 몇 번의 실패 끝에 우주 프로젝트에 성공하고, 이 위대한 업적에는 그녀의 빠르고 정확한 계산이 중요했다.
그러나 늘 명암이 있다는 말처럼,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그녀의 계산 능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컴퓨터의 계산 능력도 대단하지만 이에도 실수가 있는 법, 또다시 찾아온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의 능력은 다시 또 빛을 발한다.
이렇게 끊임없고 처절한 분투 끝에 그녀는 NASA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이것은 미국 역사에 있어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흐름에도 기여한 바가 상당했으리라 생각이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이 흑인이라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황당한 상황을 겪을 때 나오던 배경음악은 꽤나 유머러스하고 위트 있는 비트감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그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절한 현실이고 슬픔이었으리라는 생각에 음악이 더 슬프게 느껴졌다.
숨겨진 위대한 인물들(figures)은 능력이 있음에도 남들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이 필요했기에, 우리는 그들이 겪었던 삶의 고통을 진짜로 이해하고 알아내려면(figure out) 더 생각해 볼 점이 많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