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 대변인·상근 부회장을 역임했던 송형곤 젬백스앤카엘 바이오사업부 사장이 대표이사에 선임되면서 그의 '해결사'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이오 기업에 둥지를 튼지 2년 남짓한 기간에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르게 되면서 의사 출신이라는 장점을 십분 발휘, 전문경영인 자리에 발탁됐다는 평.
송형곤 대표이사를 만나 진행 중인 임상과 췌장암 면역항암치료제 리아백스의 시장성 등 산적한 당면 과제에 대한 해법을 들어봤다.
"9회말 투 아웃에 등판했다."
"젬백스앤카엘이 겪어온 시간을 인생에 비유한다면 태어나서 유년기를 지나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까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는 청년기에 돌입해야 합니다."
그의 언급의 행간은 젬백스의 위기이자 기회로 읽힌다. 2008년 카엘젬백스를 설립해 노르웨이 GemVax AS 를 인수하고 지금까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던 2012년, 영국에서 실시했던 췌장암 3상 결과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시장의 신뢰 회복은 숙제로 남았다.
중국 화련 신광과의 합작 법인 설립해 중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사드 사태 등으로 중국행 실크로드마저 막혔다.
이어 이오탁신을 바이오마커로 다시 도전한 국내 췌장암 3상, 올해 가능성을 보여준 전립선비대증 2상, 그리고 최근 시동을 건 알츠하이머 미국 2상 임상 허가까지 모두 송형곤 대표이사가 풀어야할 과제다.
송형곤 대표는 "9회 말 투 아웃 상황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느낌이다"며 "제약사로서의 본질적인 가치, 연구를 통한 가치 창출로 시장의 신뢰를 우선적으로 회복할테니 두고 봐 달라"고 강조했다.
'믿어달라'는 자신감의 원천은 역시 회사의 본질적 가치인 연구 기술력에서 찾을 수 있다.
젬백스는 오는 10월 아시아전립선학회에서 리아백스의 전립선비대증 임상 2상 발표를 앞두고 있다. 160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물을 얻었다는 후문.
송형곤 대표는 "전립선비대증 2상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며 "리아백스는 발기부전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 다른 전립선비대증 치료제와의 헤드 투 헤드 임상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시장 1~2위 품목과의 비교 임상시험을 통해 비열등성 혹은 우월성을 살필 생각이다"며 "비교 우위를 따지는 작업은 리스크가 크지만 그만큼 시장에 각인시키는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췌장암 적응증의 리아백스에서 '조건부 허가' 꼬리표를 뗀다는 계획도 세웠다. 젬백스의 첫번째 약이라는 상징성뿐 아니라 기술력의 상징인 항암제라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리아백스주는 젬백스앤카엘이 개발해 삼성제약을 통해 국내에 판매하고 있는 췌장암에 대한 면역치료제.
2014년 식약처는 이오탁신(Eotaxin)이 높은 환자에게 선택적으로 투여하는 조건으로 리아백스의 판매를 승인했다.
송형곤 대표이사는 "췌장암 임상 3상을 통해 내년 조건부 허가를 허가로 확대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148명 규모의 췌장암 임상 환자 모집에서 최근 99명의 환자군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건부 꼬리표를 뗀다고 해도 환자들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하겠다"며 "국내 췌장암 환자는 연간 6천명 정도로 리아백스 처방 환자는 2천명에 불과해 국내보다는 세계 시장에서 수익을 낼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리아백스는 2014년 10월 첫 식약처 승인을 시작으로 2017년 8월 18일까지 총 177건, 1968 바이알의 임상시험용의약품의 응급상황 또는 치료목적 사용승인을 받았다.
젬백스는 응급상황시 긴급 사용되는 응급상황 사용승인 제도를 통해 신청이 들어오는 경우 리아백스주를 초기 승인 후 12 바이알, 재투여 승인후 6 바이알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1 바이알 당 실제 판매가는 52만 7,000원으로 젬백스가 무상 제공한 건은 총 177건, 1968 바이알의 총 가격은 9억 5492만원에 달한다.
의사 출신 CEO의 원칙 경영 승부수
수 백만원을 넘어 수 억원을 호가하는 치료제가 등장한 마당에 합리적 약가를 선언한 송형곤 사장의 언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서는 경영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송 대표는 "돈을 벌기 위해서 약을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좋은 약을 만드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신약 개발 기업의 최우선 목표는 원칙을 지켜서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약을 만드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약을 만들면 돈은 당연히 따라오게 된다"는 것.
취임 직후 임직원들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서도 송형곤 대표는 "약을 만드는 사람의 목표가 돈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은 망가지게 된다"며 "좋은 약을 만들면 돈은 당연히 따라온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요즘 그는 의사라는 '전직' 덕을 보고 있다. 대표이사로서 직접 뛰며 임상연구자들을 만나 독려도 하고 채근도 한다. 임상 스케쥴의 원활한 진행이 곧 신약 개발 회사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송형곤 대표는 "의사 CEO로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직접 부딪치며 논문과 씨름하고 임상시험수탁기관의 결과를 직접 해석하면서 소통하니까 조금씩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교수일 때나 임상 의사였을 때는 의사 출신 제약사 사장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임상 연구자들과 협업이나 신약 후보 물질 발굴을 위해 교수들과 기업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의사로서의 경험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네릭 중심의 업체에서는 굳이 의사 사장이 필요없지만 신약을 개발하는 업체에서는 의사 사장의 능력이 필수적이라는 게 그의 판단.
9회 말 역전 드라마는 탄생할 수 있을까. 그가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임직원 여러분, 많이 힘드시지요?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애써 주시기 바랍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주십시오. 조금만 더 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