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조금 흐렸지만 그래도 기대를 걸어보면 조금이나마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만한 애매한 날씨였다.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석양 보기에 최적의 스팟이라는 카페를 가기로 한 일정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우버를 이용하여 택시를 불렀고 십여분 걸려 코타키나발루에서 유명한 리조트 중 하나인 곳으로 갔다.
참고로 코타키나발루에서 바가지를 쓰지 않고 적절한 가격에 택시를 이용하려면 우버 앱 이용이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흥정을 하다가 힘을 다 빼버릴지도 모른다…
도착할 때까지도 날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비가 오고 있진 않았기에 석양을 보기에 적합하다고 잘 알려진 카페 쪽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가 머무는 리조트가 아니기에 천천히 산책하면서 리조트 부근을 구경하였고, 그러다 보니 breeze라는 펍이자 식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석양이 지려면 한 두시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가장 바다와 가까운 자리로 테이블을 잡고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저녁을 먹기로 했다.
평소 같았으면 인터넷을 보면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어떤 메뉴를 추천했을지 찾아 보려했겠지만 그곳은 메뉴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고, 음식 맛 자체보다는 석양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의미로 방문해서 그런지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메뉴 중에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하나씩 골라서 주문했다. 아무래도 자리세가 좀 있어서 그런지 메뉴의 종류 치고는 가격이 조금 더 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일단 석양 구경은 뒤로 하고 일단 맛있게 밥을 먹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햄버거를 주문했는데, 신기한 것이 여행을 어느 곳을 가든지 꼭 한 번씩은 햄버거를 먹을 일이 있었고, 매번 상상 이상으로 맛있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별다른 고민없이 이번에도 햄버거를 주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보통 생각하는 패스트푸드로서의 햄버거가 아니라 수제 버거로 꽤나 좋은 재료와 정성이 들어간 요리로 나오기 때문에 이번에도 역시 그 맛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버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도 맛있게 드셨던 것 같다.
그리고 오징어 튀김을 시켰는데, 저녁으로 하기에는 다소 부실한 메뉴이지만 어머니가 워낙 좋아하시는 음식이기도 하고,
바다 옆에서 먹는 오징어 튀김은 어떤 맛일까 궁금하여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주문했고 이 역시도 만족스러웠다. 배도 고팠고 아직 석양이 뜨기엔 이른 시간이라 금방 요리를 해치웠고 이제는 바다를 보면서 석양을 기다리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날씨가 그새 조금 개었다. 기대한 만큼 구름이 완전히 걷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석양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이 될 만한 날씨였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다들 해변가 주변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미리 사진도 찍으면서 석양을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구름이 조금씩 몰려 오는 것 같더니 이게 그 유명하다던 석양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금은 애매한 빛의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고, 아무리 기다려도 크게 변하지 않고 비슷한 색깔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는 ‘아, 오늘도 완전히 기대하는 최고의 석양은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그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맞았다.
많이 아쉬웠고 슬펐지만 그래도 석양을 보기 위해 온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충분히 행복했고, 어머니와 함께 석양을 기다리면서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떠는 순간 순간 자체가 내겐 너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