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간호사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답은 임상에서 찾고 증명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이 소신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처음 자원한 곳은 중환자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운 꿈을 찾게 된다. 바로 신장. 4년차부터 지속적신대체요법(CRRT) 전담간호사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3년을 CRRT 전담간호사로 활동한 경험은 그를 만성 신부전 환자를 상대하는 '혈액투석실'로 이끌었다. 혈액투석실 근무 5개월차를 맞은 그에게 신장은 여전히 공부해야 할 분야다.
"CRRT 전담간호사는 기계와 인간의 중간자 위치에 있다. 혈액투석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투석 기기를 잘 다루면서도 환자를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잘 케어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신부전 환자에게 더 나은 간호를 제공하기 위한 '신장내과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이 청년은 세브란스병원 혈액투석실 김대영 간호사(36)다.
메디칼타임즈는 대한간호협회와 공동기획하는 '나는 간호사다' 인터뷰를 통해 신장투석실 간호사의 일상을 들어봤다.
Q. 투석간호사는 기계와 인간을 연결한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투석간호사가 하는 일이 더 궁금해지는데요.
혈액투석 기기나 CRRT 원리는 95% 똑같습니다. 나머지 5%는 연결부위 차이일 뿐이죠. 투석기계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기계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계의 원리와 작동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합니다. 투석이 진행되는 동안은 기계와 대화하는 과정이니까요.
더불어 투석실을 이용하는 환자 특징이 만성, 장기 환자입니다. 단순히 투석을 해서 혈액 수치만 조정하는 게 아니고 조혈, 골 생성이 잘 안 되는 등의 여러 부작용도 함께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즉, 환자도 보고 기계도 봐야 하는 거죠. 그래서 기계와 인간을 연결하는 위치에 간호사가 있다고 표현을 하는 겁니다. CRRT를 3년간 다룬 경험이 혈액투석실에 적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Q. 만성 환자를 케어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투석 간호사로서 갖춰야 하는 게 있을까요.
만성신부전 환자는 장기간 식생활부터 제한을 받고, 병원을 오가며 생활습관 관리를 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습니다. 여행한 번 가기도 어려우니 말이죠. 그래서 혈액투석실이 신규 보다 경력 간호사를 선호하기도 하죠.
환자 시야에 늘 간호사가 있어 환자들이 투석을 받으면서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간호사와 정서적으로 많이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투석간호사는 정서적 스킨십이 많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그 간호사한테는 투석 받고싶지 않다"고 하는 환자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감정노동 강도가 큰 곳입니다. 정서적으로 여유로울 수 있고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간호사의 주요 가치 중 하나가 환자와 의료기술 중재자 위치에 있다는 것인데 투석실 간호사가 간호사의 미래가치와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 케어에 대한 요구도도 나날이 올라가고 있고 말이죠.
Q. 그렇다면 다양한 만성신부전 환자를 경험하면서 보람됐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만성신부전은 신장 이식을 받기 전까지는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환자가 편안히 투석을 받고 간호사가 조언하는 생활습관, 식습관 등을 잘 이행하면 보람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복숭아는 칼륨이 높은 과일인데 먹고 싶어서 과하게 먹어 응급실로 실려오면 안타깝죠. 반대로 주말 모임을 갔는데 음식을 잘 참았다고 환자가 자랑하듯 이야기하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신장이식 후 투석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를 보면 온 마음을 다해 축하를 건넵니다. 이식 수술 전 마지막 투석을 할 때면 만감이 교차하죠.
CRRT 전담간호사로 근무할 때는 더 역동적이었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급성신부전 환자를 케어하다 보니 중환자팀과 긴밀한 협조가 필수였습니다. 급성 위험 상태에서 빠르고 안전하게 환자를 안정 상태로 교정하는 업무라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핸들링을 잘 해 고비를 넘기면 보람의 강도는 더 크죠.
Q. 투석간호사가 '전문'간호사 제도 안에 들어가 있지는 않은데요. 따로 해야 하는 공부가 있을까요.
공부라기보다는 기계와 사람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칫 투석실 일이 익숙해지면 투석기기를 환자에게 연결하고, 투석하고, 종료하고, 투석 전후 평가하는 등의 과정이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세브란스병원 혈액투석실에는 20여명의 간호사가 일하고 있는데 소규모로 모임을 만들어 보다 나은 질 관리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6명으로 이뤄진 질 향상(QI)팀에서 통계를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동정맥루를 한 번 형성하면 장기간 써야 하는데 이를 더 잘 관리하는 방법, 투석 바늘 천자하는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소소한 것 바꿔나가기를 좋아합니다. 환자 컴플레인의 90%가 니들링이라는 데 착안, 바늘 쓰는 방법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현장에 적용하려고 합니다.
간호사는 개인사업이 아닙니다. 팀이 간호를 제공하는 것이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입니다. 팀이 발전할 수 있는 게 장기적으로 좋은 것입니다. 다른 팀원이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같이 협조하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Q. 20명이 넘는 혈액투석실 간호사 중 유일한 남자 간호사입니다. 적응해 나갈 수 있는 팁 하나만 알려주세요.
간호사는 아무래도 여성 중심의 집단이다 보니 남자 간호사가 적응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저도 대학 때, 임상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후배 간호사에게도 말하는 것은 사람들과 인간관계의 끊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보통 탈의실이 남녀로 분리돼 있는데, 옷을 갈아입고 여성 탈의실 앞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퇴근합니다. 일만 끝나면 인사만 하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일이 끝난 후 인간적인 교류가 이어지게 됩니다. 퇴근 정도만 같이해도 적응해 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Q. '나는 간호사다'의 공통질문입니다. 이 코너가 간호대생들과 신규 간호사들을 위한 직업 탐방과 같은 코너거든요. 간호사의 길을 걸으려는 후배들에게 이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어떤 간호사가 될 건지에 대한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임상에서 어떤 간호사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전인간호라고 가르치지만 현장에는 임상 '스킬'만 갖고 오고 '전인'을 잊어버립니다.
나와 환자, 여기서 존재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간호대생은 고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식을 바탕으로 진단, 처방하는 것은 의사 책임입니다. 간호사도 그것을 모르고 있어서는 안되지만 지식을 실제화 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