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살려줘…"
간호조무사 김라희 씨가 전화로 남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김 씨는 지난달 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의 희생자다. 그는 간호업무를 수행하던 중 환자를 대피시키고, 구조하다 변을 당했다.
김 씨의 남편 이재문 씨는 6일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가 개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아내의 마지막을 담담히 말했다.
이 씨는 "지금도 아내의 살려달라는 말이 환청처럼 계속 들리고 있다"며 "아내는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출산도 미룰만큼 환자 돌보는 일을 좋아했고 누구보다 간호조무사로서 사명감과 자긍심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일부 환자가 간호사에게 부르는 선생님이 아닌 아가씨라고 부를 때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며 "아내는 한 대학 간호학과에 입학원서를 넣고 최종발표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결과도 확인하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다.
이 씨는 이번 사고 일반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가 간호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기자회견장에 자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병원급, 특히 지방 중소병원에는 아내처럼 간호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조무사가 많이 있다고 들었다"며 "아내의 희생을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간호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간호업무를 하는 투명인간 간호조무사가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이어 "간호조무사들이 간호대를 따로 진학하지 않고서도 간호조무사로서 자존감을 갖고 전문직종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간호조무사협회는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를 계기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일반병동에서 간호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를 간호수가 차등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적극 펼쳐나갈 계획이다.
홍옥녀 회장은 "현재 취업 간호조무사 18만여명 중 약 80%는 법적 근거에 의해 간호사의 업무 중 일부 또는 전부를 대체하고 있다"면서도 "나머지 20%는 중소병원 등에서 간호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간호수가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국 3만여명의 간호조무사가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한 채 투명인간처럼 제도적 사각지대에서 희생당하고 있으며 죽어서 의사자가 돼도 법정 간호인력이 아니었다는 비정한 꼬리표를 달아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서울 한 중소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 A씨의 이야기는 간무협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A씨가 일하는 병원은 40년 역사를 가진 100병상 미만 병원이다. 비슷한 숫자의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팀 간호를 하면서 간호업무를 하고 있다.
A씨는 "병동에서 간호사와 3교대 근무를 하고 있고 의사나 수간호사의 지시를 받아 간호사와 함께 입원환자 간호업무를 하고 있다"며 "수술실에서는 간호사와 함께 수술어시스트 업무도 하고 있다. 외래는 대부분 간호조무사가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규모가 작은 중소병원은 임금과 근무여건이 대학병원과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간호사가 매우 부족하다. 특히 밀양 세종병원처럼 지방 소도시나 군단위 지역은 간호사를 구할 수 없어서 간호조무사를 더 많이 채용할 수밖에 없는 병원도 많다.
A씨는 "간호조무사가 병동에서 입원환자를 간호하고 수술어시스트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간호조무사는 법정 간호인력이 아니라고 한다"며 "30년 넘게 병원에서 환자 곁을 지키며 간호업무를 해왔는데 투명인간이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간호조무사도 간호인력"이라며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간호조무사를 법정 간호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법을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