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장을 달하는 의무기록서 사본을 가져오는 환자들이 급증함에 따라 사본 스캔을 전담하는 직원의 추가 채용까지 논의할 정도다.
13일 병원계에 따르면, 최근 지방 A대학병원은 긴급 집행부 회의를 갖고 의무기록서 사본 확인 및 스캔을 전담하는 직원을 추가 채용하기로 했다. 임시로 타 부서 직원을 배치해 관련 업무를 맡긴 상태다.
A대학병원의 사정은 이렇다.
서울의 일부 대형 대학병원들이 환자 편의를 이유로 의무기록서 사본을 수수료를 받지 않거나 소액을 받고 복사해주는 일이 발생함에 따라 해당 환자들이 진료의뢰서 대신 의무기록서를 들고 내원한다.
심지어 10년 전 혈액검사 기록까지 포함된 수백장에 달하는 의무기록서 사본을 들고 오는 환자가 있다는 것이 A대학병원 측의 설명이다.
현재 의무기록서 사본의 경우 의료법 제45조의 3에 따라 제증명수수료 항목에 포함돼 특정 금액 이상으로 받을 수 없다. 다만, 의무기록서 사본 복사 등을 수수료를 받지 않고 무료로 해줘도 의료법 위반은 아니다.
A대학병원 한 보직 교수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은 의무기록서 사본을 무료로 해준다는 말까지 있다. 특정 대형병원에서 온 환자는 수백장의 차트와 검사기록을 모두 가져왔다"며 "이를 모두 읽기도 힘든데다 스캔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난 주에는 이들 대형 대학병원들의 의무기록서 폭탄 때문에 집행부 회의까지 했다. 스캔 담당 직원을 추가로 채용해야 하는지 여부였는데 채용할 때까지 타부서 직원을 임시로 배치했다"며 "물론 환자의 편의 등을 고려한 조치라고 하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보다는 대형병원 자신들의 편의를 위한 부분이 더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편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경기도 B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암 환자일 경우 지방의 대학병원으로 오려면 진료의뢰서를 받아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담당 의사가 진료의뢰서를 작성하기 위해 기존의 수술, 항암치료 과정을 듣다보면 10분 이상의 진료시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진료의뢰서 한장을 작성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해당 환자는 타 병원으로 회송하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선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국에서 환자가 밀려드는 대형 대학병원 측이 돈 안되고 진료시간은 긴 '진료의뢰서' 작성을 은근슬쩍 의무기록서 사본으로 대체함으로써 병원 수익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진료의뢰서 작성을 위한 진료는 수익이 제한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환자"라며 "일부 대형 대학병원이 의무기록서 사본에 대한 비용 부담을 낮추면서 환자들이 진료의뢰서 대신 의무기록서를 제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시 말해 진료의뢰서를 작성하기 위해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대신에 의무기록서를 복사해줌으로써 관련 과정을 생략하려는 '꼼수'라는 것이다.
또 다른 서울 C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의무기록서 사본을 복사해준다고 하면 환자 입장에서도 의사를 또 만날 필요가 없고, 병원 입장에서는 그 시간에 흔히 말해 돈이 되는 환자를 볼 수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 같은 의무기록서 뭉치를 받는 지방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수백장의 의무기록서를 봐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시간에 그들도 환자를 봐야 할 것이 아닌가"라며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고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명백히 할인행위나 마찬가지다. 수백장의 의무기록서를 읽어야 하는 의사와 이를 스캔하는 직원들은 한 마디로 죽을 맛"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