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병원들의 ‘의료기기 수입허가증’ 제출 요구에 대해 의료기기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홍순욱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메디칼타임즈 ‘의료기기업계는 왜 수입허가증 딜레마에 빠졌나’ 보도와 관련해 8월 협회 이사회에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올해 안에 구체적인 대응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기자는 지난 7월 17일 ‘의료기기업계는 왜 수입허가증 딜레마에 빠졌나’ 기사를 통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기업 기밀정보에 해당하는 원재료·시험규격을 포함한 수입허가증 복사본 전체를 업체에 요구한 정황을 보도했다.
당시 복수의 다국적기업 관계자에 따르면, 세브란스병원 물류팀은 지난해 12월부터 의료기기업체들에게 신제품 병원 코드 등록을 위해 의료기기 수입허가증 복사본 전체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모양 및 구조 ▲사용 방법 ▲사용 시 주의사항 등 제품 확인을 위한 수입허가증 일부 내용만 간소하게 제출했던 것과 달리 기업 대외비에 해당하는 원재료·시험규격까지 내라는 이례적인 요구로 의료기기업체들의 공분을 샀다.
업체 입장에서는 병원의 무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신제품 코드 등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내용을 조금씩 추가하는 방법으로 요약본을 작성해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관련해 세브란스병원은 원재료·시혐규격을 포함한 수입허가증 복사본 전체를 요구한 적이 없다며 업체들의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다만 시험규격은 법적 자문 후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아 자료를 요구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시험규격의 경우 일부 업체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제출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환자 안전’을 위해 해당 제품을 사용해도 되는지 근거 마련을 위해 사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해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불거진 세브란스병원의 수입허가증 제출 요구는 지금도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병원들의 이 같은 요구가 점차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다국적기업 한 임원은 “세브란스병원뿐만 아니라 상당수 국립병원들도 수입허가증 복사본 전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업체들을 대신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대응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주문했다.
또 다른 의료기기업체 인허가(RA) 담당자는 “병원들이 원재료·시험규격과 같은 기업 대외비를 포함한 수입허가증 복사본 전체를 제출하라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하지만 을의 입장에서 병원을 상대로 문제를 지적하고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특히 “업체 입장에서는 신제품 코드 등록을 해야 제품을 팔 수 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부당한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며 “수입허가증을 통째로 제출하라는 병원들이 늘어날수록 업체들의 어려움은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메디칼타임즈 보도 이후 지난 8월 이사회 회의에서 병원들의 수입허가증 제출 요구에 따른 회원사들의 피해와 문제 심각성을 인지해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순욱 부회장은 “병원이 수입허가증 복사본 전체를 요구하는 명분으로 ‘환자 안전’을 내세우지만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자체를 믿지 못한다는 말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어 “식약처를 신뢰하지 못하면서 의약품은 환자에게 어떻게 처방하는지 모르겠다”며 병원들의 행태를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그간 업계 일각에서는 협회가 병원의 수입허가증 제출 요구에 따른 회원사들의 피해와 어려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사실.
홍 부회장은 이에 대해 “오해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협회 역할이 무작정 병원에 공문만 보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회원사들의 피해사례를 분석하고 효과적인 대응방안을 판단해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뿐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오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협회가 섣불리 나섰다가 오히려 그 피해와 불이익이 회원사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며 “이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협회가 구상 중인 대응방안은 크게 3가지로 추정된다.
해당 병원에 시정을 요구하는 공문 발송 또는 복지부 실태조사를 의뢰하거나 법무법인을 통한 법적대응도 배제할 수 없다.
홍순욱 부회장은 현재 논의 중인 대응책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회원사들의 피해사례를 수집·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말하기 곤란하다”며 “다만 병원에 대한 압박 강도를 어떻게 할 것이지 조율 중에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협회 윤리위원회가 중심이 되고 필요하면 법규위·보험위까지 가세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최대한 빨리, 늦어도 올해 안에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