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공학을 기반으로 IT·BT·NT가 융합된 ‘의공학’(Biomedical Engineering)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첨단 융·복합기술로 구현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 주목받고 있는 학문이다.
하지만 학문의 경계가 모호하고 ‘의용생체공학·의용공학·의료공학·의료전자공학’ 등 다양한 이름으로 지칭될 정도로 영역이 방대하다보니 의공학을 전공하더라도 특화된 전문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고 취업·진로 또한 불명확하다.
흔히 병원 내 ‘의료기기 안전관리자’로 불리는 의공사만 봐도 그렇다.
대한의공협회가 2012년 전국 146개 병원 의공사 인력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146개 병원 중 27.4%에 해당하는 약 40개 병원에는 의공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또 전체 9만5112개 병상대비 의공사는 472명으로 평균 100병상 당 그 수가 0.5%에 불과했다.
전국 40여개 대학 의공학과 학생들이 병원 의공사 또는 의료기기업계 선배·멘토들에게 4차 산업혁명시대 ‘의공학’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졌다.
한국의공학전공대학생연합(Korea Biomedical Engineering Student Association·KBESA)은 전국 의공학과 학생들이 의공학 발전을 도모하고 취업·진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고자 2011년 결성된 연합회.
특히 지난 3월 제34회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 2018)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의공학을 다시 묻다’를 주제로 제6회 KBESA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는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헬스케어의 의공학적 활용’ ‘AI를 통한 임상 데이터의 분석’ 등 전문가 강연과 함께 의료기기업체 멘토들과의 테이블 멘토링 시간을 통해 의공학과 학생들의 진로를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KBESA 오원영(경희대 생체의공학과 3학년) 회장·김소연(가천대 의용생체공학과 3학년) 부회장을 만나 연합회 활동과 의공학과 학생들의 취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았다.
오원영 회장은 “전국적으로 40개가 넘는 대학에 의공학과가 있으며, 최근 이화여대·한국외국어대에도 관련 학과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마다 의공학과 커리큘럼은 다르다. 경희대는 생리학·생화학을 배우기도 하지만 주로 전자공학 관련 과목을 이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몇 년 전만해도 선배들이 전자공학을 복수전공으로 많이 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의공학을 단일 전공으로 깊게 배우자는 트렌드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김소연 부회장 또한 “가천대 역시 전자공학 관련 커리큘럼이 약 7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 소프트웨어(20%)·생물학(10%)을 배운다”고 말했다.
의공학과 학생들은 졸업 후 어디로 취업을 할까.
비교적 안정적인 고용이 보장되는 것은 물론 전공을 살려 의공학교실 또는 의공팀이 있는 의료기관을 선호하지 않을까하는 기자의 단순한 생각은 크게 빗나갔다.
오 회장은 “병원 의공팀에서 의공사를 잘 안 뽑기 때문에 의료기관 취업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졸업생들도 대학병원에 취업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주로 의료기기업체 취업을 고려한다. 전자공학 복수전공자는 전자공학 전공을 살려 업체에 취업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한다. 또 의공학과 단일 전공자의 경우 대학원 진학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는 최근 국가공인자격증으로 승격한 의료기기 RA(Regulatory Affairs)분야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 역시 “졸업생들을 보면 국내외 의료기기업체 엔지니어, RA, 영업사원으로 취업을 하거나 대학원 진학을 주로 한다”고 설명했다.
대학졸업을 앞둔 모든 청춘들이 그렇듯 의공학과 학생들 또한 취업·진로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다.
학부 과정에서 배운 지식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 만큼 전문성이 있는지, 또 의공학과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불명확하다는 것.
김소연 학생은 “학교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인공지능(AI)·빅데이터·IoT 등 융·복합 첨단 의료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학과 과정에서는 이런 분야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과목이 없기 때문에 좀 더 깊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대학원 진학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오원영 학생은 “의공학은 학문 자체가 워낙 방대해 대학 4년 과정만으로 전공하기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며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졸업 후 취업할 수 있는 전문성은 있는지, 또 어느 곳에 취업해야 의공학 전공을 살릴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한국의공학전공대학생연합(KBESA)은 강연회와 의공인의 밤 행사를 개최하고 연구소·의료기기기업체 견학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의공학의 학문적·산업적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의공학도들의 취업·진로를 전문가 멘토들과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오원영 회장은 “매년 KIMES 기간 개최하는 강연회는 KBESA의 가장 큰 행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올해 제6회 강연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헬스케어의 의공학적 활용·AI를 통한 임상 데이터의 분석’ 등 전문가 강연과 함께 의공학에 종사하고 있는 멘토들과의 테이블 멘토링 시간을 통해 의공학과 학생들의 진로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월 첫 주최한 ‘의공인의 밤’ 또한 의공학과 교수·의료기기업체 CEO 등 의공학 선배 및 전문가 멘토들과 함께 취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현실적인 조언을 구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KBESA 운영진으로서 내년 3월 제7회 KBESA 강연회를 준비해야하는 오원영·김소연 학생은 벌써부터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기획·대외협력·홍보·운영지원팀을 꾸려 강연회 주제 선정, 연자 섭외, 온·오프라인 홍보 등 업무를 분담한다고 하지만 대학생들이 준비하는 만큼 서투를 수밖에 없는 법.
더 큰 고민은 각종 행사에 소요되는 재원 마련과 의료기기업체 연자·멘토 참여 등 섭외에 있다.
오 회장은 “초기에는 학교 학생회 후원이나 대한의공협회 등에서 지원을 받아 강연회를 개최했다”며 “하지만 연합회다보니 회장이 바뀌면 연락이 끊겨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강연회는 다행히 다국적기업 한 곳에서 일부 후원을 해줘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지난 10월 의공인의 밤 행사는 사전에 의료기기업체 선배 종사자들을 멘토로 모시기 위해 약 30곳에 초청 메일을 보냈지만 7곳에서만 회신이 왔다”며 아쉬운 속내를 내비쳤다.
어쩌면 조만간 병원 의공팀 또는 의료기기업체 기술·개발·영업·RA팀 등 그 누군가의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 의공학과 학생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