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규제라는 말만 들어도 과민반응을 보였던 업계가 오히려 융·복합 첨단 의료기기의 선제적·선도적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원하고 있다.
실제로 본지 지난달 30일자 ‘無中生有’ 식약처 첨단의료기기과 ‘삼총사’를 만나다 인터뷰 기사에 달린 댓글 대부분은 식약처 내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 전담조직 신설을 간절히 바라는 내용이었다.
13명의 인력이 참여한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유닛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 FDA.
이와 달리 식약처 의료기기심사부 첨단의료기기과 단 3명이 전담조직조차 없이 인공지능(AI) 등 융·복합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개발을 담당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식약처가 규제기관으로 불리는 이유는 의료기기 인허가부터 사후관리까지 제품 안전성 유효성을 심사·검증하는 선제적 또는 후향적 ‘규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규제를 의미하는 영어 ‘Regulation’에는 평형을 유지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업계의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 전담조직 신설 목소리는 식약처 의료기기심사부와 오랜 시간 일방적·수직적 관계가 아닌 균형 잡힌 상호보완적 파트너로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등 규제 방향을 함께 논의해온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식약처 첨단의료기기과 강영규 연구관과 손승호·한영민 주무관 역시 4차 산업혁명시대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개발은 의료기기업계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강 연구관은 “현행 의료기기법에서 요구하는 임상이나 시판 후 허가(PMS) 및 변경 등 기존 규제로는 AI·유헬스케어·의료로봇·의료용 SW(SaMD) 등을 적용한 첨단 의료기기 허가심사를 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현황 조사를 하고 현행 규정에서의 문제점을 도출해 제도개선을 하기 위해서는 산학연 전문가들과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I 의료기기·3D 프린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모두 매월 한 번씩 산학연 협의체를 통해 의료계·산업계의 이해와 요구사항 간격을 조정해 합리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손승호 주무관 또한 “융·복합 기술을 접목한 신개발 의료기기의 선제적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은 식약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의료기기업체·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하고 협업해야 가능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러한 노력 때문에 AI 의료기기·3D 프린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이 나왔을 때 업계에서도 크게 공감해주고 호응을 해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식약처 첨단의료기기과와 의료기기업계와의 협업은 올해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강영규 연구관은 “지난 2년 정도 운영된 AI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은 문제점이나 개선사항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해 올해 추가적으로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3D 프린터 역시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주로 많이 생산되는 품목, 특히 치과용 제품에 대해서는 올해 품목별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공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강영규 연구관·손승호·한영민 주무관은 제품 개발과정에서 사전에 식약처 도움을 받고 싶어도 ‘문턱이 높다’는 일부 업체들에 대해서도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강 연구관은 “문턱이 높은 건 사실이다.(웃음) 농담이다. 우리 첨단의료기기과에도 하루에 많은 민원전화가 오고, 손승호·한영민 주무관도 민원상담을 많이 하고 있다”며 “제품 개발 과정에서 상담을 받거나 질의를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첨단의료기기과 문을 두드리면 된다”고 전했다.
한영민 주무관은 식약처가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지원제도를 적극 활용해 줄 것을 주문했다.
한 주무관은 “식약처는 인허가 준비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신개발 의료기기 허가도우미’, 국내외 규제 동향과 인허가 정보를 제공하는 ‘의료기기통합정보뱅크’, 첨단 의료기기 조기시장 진입을 앞당기는 ‘차세대 의료기기 100 프로젝트’ 등 다양한 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홍보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기업체들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내며 “식약처 지원제도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개발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손승호 주무관은 식약처를 찾기 전 업체 스스로가 개발하려는 의료기기의 기준규격을 먼저 살펴보고, 최소한의 안전성 유효성 검증을 자체적으로 해보는 것이 선행돼야한다고 조언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영민 주무관은 그 이유와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업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찾아오면 기본적인 것만 이야기하거나 도와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업체 스스로 공부가 돼 있는 상태에서 첨단의료기기과 문을 두드리면 훨씬 더 풍부하고 질 좋은 민원상담이 가능하다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강영규 연구관은 식약처와 의료기기업계 모두가 서로에게 더 큰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강 연구관은 “업체들은 식약처 업무부터 글로벌 의료기기 인허가제도 흐름까지 의료기기 현안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의료기기산업육성 및 혁신의료기기지원법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며 “이 법은 진흥법이자 특별법인 만큼 규제기관이 아닌 업체에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업계 스스로 노력을 하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덧붙여 “식약처는 업계가 뭘 요구하는지 관심을 갖고, 업계 또한 식약처가 어떤 것을 해주면 좋을지 말을 해줬으면 한다”며 “앞으로도 의료기기심사부 첨단의료기기과는 민관협의체 운영·의료기기 소통포럼 등 업계와 소통하고 상생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