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소청과 부부가 운영하는 대구 한솔요양병원
요란한 타악기 공연으로 유명세 특성상 심장자극 효과도
박양명 기자
기사입력: 2019-04-03 12:00:50
가
URL복사
[6]대구 한솔요양병원 "환자가 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준비됐습니까?"
머리에 넥타이를 두른 황순구 원장의 질문에 응답하듯 꽹과리 소리가 병실의 적막함을 깼다. 황 원장은 북을, 그의 아내 이명옥 부원장은 장구를 둘러매고 꽹과리를 따랐다.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노인 환자들이 벌떡 일어나 앉아 손뼉을 치는가 하면 병실 중간으로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춘다.
대구 한솔요양병원 황순구 원장 부부와 직원들은 매월 한 번씩 4개 층에 걸쳐 있는 약 30개의 병동을 돌며 사물놀이를 한다. 290병상을 모두 돌고 나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메디칼타임즈가 찾은 지난달 21일은 마침 사물놀이를 하는 날이었다. 이 날은 특별히 입원 환자인 70대 할아버지가 리코더를 불며 사물놀이 대열에 합류했다.
황 원장은 "취미로 시작한 사물놀이를 병원에서 해보면 어떻겠냐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는데 그 어떤 프로그램 보다 강력하게 효과가 있다"며 "어르신들이 사물놀이 시간을 모두 기다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눈을 감고 있던 환자가 손뼉을 치기도 한다"며 "용돈을 쥐어주시기도 하고, 어쩌다 병실 하나를 빠트리면 눈물을 흘리시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타악기 특성상 심장 박동과 연결돼 환자의 잠겨 있는 의식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게 황 원장의 설명이다.
2013년 개원한 한솔요양병원은 사물놀이 외에도 황 원장이 직접 진행하는 아침체조, 경상북도 청송에서 약수물을 직접 길어와 밥을 제공하는 등 환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황순구 원장은 모두 '돈' 보다 '환자'를 중심으로 생각했더니 시작된 일이라고 했다.
한솔요양병원은 특이하게도 '요양병원'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부가 운영한다.
"솔직히 말해서 요양병원을 운영하면 등 따뜻하고 배부르다고 해서 시작했다. 1~2년을 해보니 천만의 말씀이었다. 춥고 배고팠고, 자괴감에 빠졌다. 돈을 벌려고 덤비면 실망만 따라올 것이다."
황 원장은 '요양병원=돈'이라는 편견을 이같이 정리했다.
이명옥 부원장 역시 "요양병원에 대한 정부 규제가 강화되는 시점에 병원 문을 열었다"며 "환자는 30명 있는데 인증평가를 무조건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서 따로 운영하던 소아청소년과를 접고 합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년이 지나니 적자가 말도 못 하게 커졌다"며 "요양병원 운영을 계속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와서야 요양병원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고 전했다.
황 원장 부부는 대구에 있는 요양병원 10여 군데를 다녀봤는데도 '어떻게' 병원을 운영해야 할지 답이 안 나와 답답하던 찰나에 우리나라 최고의 노인 특화 병원으로 꼽히는 '희연병원'을 알게 됐다고 했다.
황 원장은 "요양병원이라고 하면 나이 든 환자를 그냥 모시고 있는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면 희연병원을 알게 되고 노인, 재활의료 강국인 일본을 수차례 경험한 결과 목표 설정이 잘못됐다는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목표를 재택 복귀로 바꾸게 됐다"며 "최대한 환자의 삶을 돌려주는 게 목표가 된 것이다. 목표가 설정되니 재활을 시작해야겠다는 답이 나왔고 2015년부터는 재활치료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말했다.
'돈'보다는 '환자'에 가치를 두니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다는 게 황 원장의 설명이다.
매일 아침 체조와 회진...환자 이름 자동 암기
매일 아침 병원의 시작은 황 원장이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아침체조다. 모든 직원과 환자가 국민체조를 하고 ▲신체 구속이 없도록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낙상이 없도록 ▲냄새가 나지 않도록 ▲기저귀와 침대에서 벗어나도록 ▲삶의 가치는 잃지 않도록 하겠다는 한솔요양병원의 다짐을 외친다.
곧이어 원장을 포함해 병원에 근무하는 8명의 의사가 모두 함께 회진을 돈다.
황순구 원장은 "여러 진료과 의사가 함께 회진을 도니 환자한테 신뢰감을 줄 수 있다"며 "의사도 혼자 고민하는 게 아니고 즉석에서 함께 고민하니 문제도 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옥 부원장 역시 "노인 환자는 한가지 병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신경과, 내과, 재활의학과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게 더 발전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황순구 원장과 이정옥 부원장은 매일 아침 모든 환자를 직접 만나다 보니 200명에 달하는 환자의 이름을 당연하다는 듯이 외우고 있었다. "왜 못 외우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솔요양병원의 환자를 위하는 마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입원해 있던 환자가 위중해져 죽음에 이르는 상황에 가면 침대에 실려 나가는 환자를 향해 간호사와 의료진이 도열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신경외과 박창수 진료원장이 임종을 맞은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하고 앰뷸런스까지 가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병원 문화로 확대된 것이다.
이명옥 부원장은 "병원을 하는 이유가 생기고 목표가 설정되니 제대로 된 병원을 만들기 위한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며 "환자가 뭘 원하는지 봐야 한다. 약을 잘 쓴다고 잘하는 병원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지금도 직원이 하루아침에 그만두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시시각각 벌어져 엄청 힘들다"면서도 "목표가 있으니 즐겁고 재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