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님이 지적한 내용에 공감합니다. 보건의료 정책과 제도 반영 여부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단골 답변이다.
일부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장관 답변에 만족하며 넘어간다.
하지만 국회 지적대로 보건의료 정책이 수정되거나 변경된 예는 극히 드물다.
여기에는 복지부 내부의 답변 매뉴얼이 숨어 있다.
복지부 장관이든 국과장이든 국회와 의료단체 토론회에서 "검토해 보겠다"라는 답변은 "지금은 생각이 없고, 중장기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 관련 언론보도 이후 복지부 해명자료에 있는 "검토하고 있다"는 전혀 다른 의미다.
보도 내용은 맞지만 공식 발표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뜻이다.
일례로, 메디칼타임즈가 단독 보도한 '상급종합병원 42개에서 50개 확대 추진 지각변동 예고'(4월 3일자) 관련 복지부 해당 과장은 얼마 전 전문기자협의회와 간담회에서 "상급종합병원 수 확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사실상 시인했다.
또 다른 답변인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정책 반영이 힘들다"는 반어법이고, "적극 검토하겠다"는 "이미 정책을 추진 중이거나 준비하고 있다"는 긍정적 화법이다.
복지부가 왜 이런 화법을 구사할까.
공무원 조직인 관료주의 특성을 반영한 조치라는 시각이다.
보건정책과 제도 추진 및 시행에는 국회와 보건의료단체, 시민단체 등의 협조가 불가피하다.
당장 정책에 반영할 수 없지만 이해 당사자를 배려해 "검토"라는 표현이 공식 매뉴얼이 된 셈이다.
복지부 한 공무원은 "문서로 존재하지 않지만 공식 회의와 행사에서 답변 수위를 결정하는 용어가 정해져 있다. 장차관이 실국장 등과 예상 질문과 답변 형식의 검독회를 하는 이유이다"라고 귀띔했다.
다른 공무원은 "어느 장관이든 시간이 흘러 업무 파악에 자신감이 생기면 검독회 수위를 벗어난 용어를 사용하며 답변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실국장과 과장은 식은땀이 흐른다"고 전했다.
의료계가 국회 전체회의와 의료현안 토론회에서 복지부 공무원들의 답변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