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호주 사람들에 비해 자살 위기 신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수준이 낮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안순태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팀은 티간 크루이(Tegan Cruwys) 호주 국립대학교(Th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심리학과 교수팀과 함께 한국과 호주 일반인 약 506명을 대상으로 한 비교연구 결과를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개최된 ‘2019 국제 정신 건강 콘퍼런스’(2019 International Mental Health Conferenc)에서 발표했다고 13일 밝혔다.
안 교수팀에 따르면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당사자 본인의 직접적인 표현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조언이 자살 위기를 해결하는데 주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호주 사람들에 비해 자살 위기 신호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살 예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참가자 506명에게 일상의 스트레스 상황(정상)과 자살 위기 상황(자살 징후)을 묘사한 삽화(vignette)를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삽화는 실제 친구와의 대화 상황을 고려해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인스턴트 메시징(instant messaging)에 제시했다.
이어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얼마나 걱정되는지,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생각하는지, 어떠한 조언을 해줄 것인지 조사했다.
이 결과 호주 사람들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3.94점)보다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4.22점)에게 높은 걱정을 표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3.89점)과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3.86점)을 향한 걱정 정도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은 특히 정상과 자살 징후에 대해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으며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사람이 처한 상황을 ‘별일 아니다’라고 단정하는 응답도 상당수 발견됐다.
이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자살 위기 신호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문제나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향해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힘내라’ 등과 같이 개인적이고 소극적 수준의 조언들을 주로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자살 위기에 처한 사람을 향해 ‘같이 술이나 마시고 잊자’와 같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조언을 제안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한국 사람들이 호주와 비교해 자살 위기 신호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은 이유가 국가 차원의 정신건강·자살 리터러시(literacy) 교육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호주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리터러시를 높이기 위한 교육과 공익 캠페인 등을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살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자살자의 93.4%가 자살 시도 전 위기 신호를 보냈지만 유가족 중 67%는 사망한 뒤에야 위기 신호를 이해했다.
더불어 14%는 위기 신호가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연구팀은 “자살 위기 상황에 대한 소극적인 개입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정신건강 이해수준을 높일 수 있는 리터러시 교육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해당 연구 논문은 국제 자살 연구 학회지 ‘Archives of Suicide Research’ 최근호에 ‘Cultural Differences in Reactions to Suicidal Ideation: A Mixed Methods Comparison of Korea and Australia’를 제목으로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