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의료수가 이대론 안된다
지난 4년 동안 건강보험 보험자와 가입자는 단 한 차례도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 했다. 이에 따라 수가 계약 무용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등 그 어느 해보다 계약 성사에 대한 의료계 내외적 압력이 드세다. 특히 건강보험재정이 당초 목표보다 3.5배 가량 초과 달성될 것으로 추계되는 가운데 가입자는 보험료 인상에 힘입은 흑자 달성과 상대적인 건강보험의 보장성 미흡을 지적하며 보험료 인상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공급자들 역시 장기 불황에 따른 환자 감소와 사상 최악의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어 어느 해보다 수가 인상요구는 거셀 전망이다. 건강보험을 구성하고 있는 가입자와 의료공급자, 보험자 등 3자를 중심으로 금년도 수가계약의 쟁점과 전망을 3회에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의료계 두 자리 인상에 배수진
<2>아전인수식 환산지수 셈법
<3>의료수가 현실성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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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흑자도 수가는 일단 열외…사면초가
대한의사협회 김재정 회장은 최근 연이어 개최되는 각 시도의사회 ‘의사회의 날’에 참석하여 “수가는 곧 의료계의 자존심이다. 이제 국민에게 욕을 먹더라도 개원가의 경영 희생을 위해 ‘수가 현실화’를 당당하게 외치겠다”며 “남은 한 달여 동안 모든 회무를 결집시켜 총력 투쟁을 펼쳐 나가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의협과 병협의 수가 인상 구체화 공조를 위한 이른바 ‘수가 동맹’을 비롯하여 ‘국민에게 욕먹을 각오’로 수가인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있는 김재정 의협 회장의 의지와는 별개로 의료계가 주장하는 수가 인상 요구는 정부, 보험자, 시민단체, 가입자단체 등에 가로막혀 초가상태에 빠졌다.
우선 연이은 경제 불황에 따른 가계 부담과 기업 경영난 ▲ 보험재정 초과 흑자 전망 ▲ 직장 가입자 보험료 과부담 주장 ▲ 급여 확대 요구 ▲ 정부의 선 재정 안정 유지 후 급여 확대 및 적정 수가 인상 검토 기조 등에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건보재정 흑자 초과달성 6,000억원은 결국 직장가입자들의 과도한 부담에서 발생한 만큼 이 돈은 전액 급여 확대에 쓰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입자들의 과도한 부담에 비례해 상대적으로 급여확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보험료 인상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히려 인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 황인철 사회정책팀장은 “지금 기업은 내수 침체와 극심한 소비심리 위축으로 어느 때보다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보험료 인상은 결국 기업 부담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황 팀장은 이어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부도 보험료 인상에 선뜻 동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건보공단 이평수 상무는 “의료수가를 높여서 의료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으나 의료수가의 수준을 정하는 기준은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상무는 이어 “결국 수가수준은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사회적 합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수가의 원가보상이나 적정수가라는 것은 개념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인천시의사회 권용오 회장은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수가로 투쟁을 한다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다”며 “의료계 입장에서는 사면초가에 빠졌다”고 안타까운 전망을 내놨다.
현행 행위별수가제 지불방식 대수술 불가피
현행 행위별수가제에서 연속되는 수가계약 불발은 지불제도 자체에 대한 근복적인 재검토 필요성을 불러올 수 밖에 없으며 작년 8월 의정간 격렬한 대립을 보였던 포괄수가제에 이어 오는 2008년 공공의료기관에 우선 적용될 총액계약제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재추진되는 명분을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감사원은 최근 건강보험운영 전반에 대한 정책감사를 통해 “포괄수가제는 과잉진료 등 행위별수가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조기정착을 위해 그 수가를 당해 질병의 행위별 수가 총액의 평균보다 높게 정하고 있으나 이를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행위별 수가가 포괄수가 보다 낮은 요양기관은 포괄수가를 청구하고 행위별 수가가 포괄수가 보다 높은 요양기관은 행위밸 수가를 청구하여 오히려 진료행태 왜곡 및 보험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사실상 복지부에 전면 시행을 주문했다.
대한의사협회 신창록 보험이사는 이와 관련 “규제와 통제위주의 건강보험제도에서 DRG 확대 및 총액관리제 도입 등 지불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오히려 건강보험의 퇴조를 초래할 수 있어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라는 건강보험제도의 근본적 토대가 우선 마련되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병원협회 이성식 경영이사도 “민간의료기관이 90%에 달하고 의료기관 수입의 70%가 건강보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지불구조의 변경은 의료기관 경영과 의료발전에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서울의대 예방의학교실 김창엽 교수는 “모든 진료를 일일이 건수별로 계산하는 현재의 행위별수가제에서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이나 이용하는 쪽이나 가급적 진료를 더 많이 하려는 동기를 갖게 되기 십상이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보험재정 지출의 팽창은 필연적이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여기에 대한 대안으로 “보험재정 지출구조를 신속하게 ‘절약형’으로 개편하는 것이다”며 “이는 진료비 지불제도를 현재의 행위별수가제에서 포괄수가제, 총액예산제 또는 총괄계약제 등의 포괄형 진료비 제도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