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현직 법관이 병원과 법원을 비교하며 사법서비스에 대해 자성하는 글을 기고해 화제가 되고 있다.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유해용(사진) 지원장은 법원 소식지인 ‘법원사람들’ 10월호에 ‘병원에 가는 판사’라는 글을 실었다.
그는 “사람들은 흔히 가운을 입고 일을 하는 세 가지 직업(성직자, 의사, 판사)을 함께 놓고 비교해 말하곤 한다”면서 “이런 사람들의 부정과 비리, 실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것이 이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물질주의와 이기심이 팽배하고 탁류가 휩쓰는 세상일지라도 누군가는 양심과 정의와 숭고한 인간정신의 수호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지원장은 “병원에서 초조하게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불쑥 차례를 어기고 먼저 진료를 받는 장면을 목격하면 ‘누군 시간이 남아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느냐’라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며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을 먼저 진행하는 관행에 대한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십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앞에 서면 왠지 주눅이 들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어도 괜히 핀잔이나 들을까봐 주저하게 된다”면서 “자기가 낸 세금으로 법원을 짓고 공무원에게 봉급도 주는 국민이 재판과정에서 이런 느낌을 갖는다면 어떤 눈으로 법원을 바라보게 될까”라며 자문했다.
병원이나 법원에서나 일반인이 잘 모르는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진행상황을 투명하게 쉽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병원에서 의사가 중심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간호사를 비롯한 스텝들의 원활한 협력이 없다면 최선의 진료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며 법원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상호 이해와 존중, 양보와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 지원장은 “언젠가 법원에 견학 온 초등학교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의사가 잘못하면 책임을 지는데, 판사가 잘못하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조리있게 설명하기가 곤란해 난감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사법권의 독립 보장, 악의적 당사자의 끊임없는 중상모략으로부터 보호, 법관의 재판권 행사에 대한 면책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논리들이 일반 시민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느냐”고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