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임의 비급여 문제가 터지면서 병원과 환자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환자들은 병원이 부당한 진료비를 부과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는 반면 병원들은 요양급여기준이 문제라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자와 병원의 갈등의 원인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요양급여기준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상>임의 비급여는 건강보험의 사생아
<하>예고된 갈등..정부는 해법을 알고 있다
최근 백혈병환우회가 가톨릭대 성모병원의 진료비 부당청구 의혹을 제기하면서 임의 비급여 문제가 다시 병원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환우회는 병원이 급여로 청구할 수 있는 항목을 환자에게 비급여로 청구해 진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폭로했다.
반면 병원계는 복지부의 불합리한 요양급여기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는 입장이다.
사실 임의 비급여를 둘러싼 논란은 비단 백혈병 환우회와 성모병원만의 문제가 아닌 대부분의 병원의 족쇄다.
모든 환자와 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결국 터진 것이다.
도덕성 의심받는 의료기관
백혈병 환우회를 비롯한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환자단체의 주장은 한가지로 요약된다.
보험적용이 되는 진료비를 임의 비급여로 환자에게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환자들이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요청을 해서 많게는 수천만원을 환급받은 것은 병원의 불법행위라고 못박고 있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심평원으로부터 환급 결정을 받은 사례를 보면 본인부담금 총액의 40~60%가 부당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환자들이 환급받은 평균 금액이 2500여만원에 달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폭로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호중(열린우리당)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병원의 임의 비급여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었다.
윤 의원은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진료비를 환급해 준 금액이 2003년 2억 7200만원에서 2005년 14억 8100만원으로 6배 이상 급증했는데 이는 의료기관의 부당청구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억울한 의료기관들 “문제는 좁은 문”
하지만 의료기관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불합리한 요양급여기준에도 불구하고 적자를 떠안으면서까지 최선의 진료를 하고 있는데 이런 노력을 알아주기는커녕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약이라 하더라도 투여일수나 투여량, 적응증 등 급여기준이 의료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약을 투여하더라도 공단에 청구하지도, 그렇다고 환자에게 부담을 지우지도 못하게 이중 족쇄를 채워놓고 있다는 게 병원계의 중론이다.
성모병원 김학기 진료부원장은 “현재 요양기준으로는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며 “눈앞에서 환자의 생명이 위독한데 급여가 되는지 여부를 따지고, 약을 쓸까, 말까 고민하면서 치료할 수는 없는 게 아니냐”고 시민단체의 주장을 반박했다.
대학병원의 의료진과 보험 담당자들은 현 요양급여기준과 복지부 지침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 치료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를 들어 치료 과정에서 수반되는 제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예방하는 약제를 처방할 경우 거의 대부분 삭감된다는 것이다.
모 대학병원 관계자는 “대다수 암에 항암제를 투여할 때 위궤양이 수반되는 것을 막기 위해 궤양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현 규정상으로는 위궤양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약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항암제로 인한 위궤양을 예방하는 약제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로섹주사’는 심사기준상 내시경으로 궤양출혈을 보일 때 5일 이내의 범위에서 투여하도록 정해져 있다.
하지만 항암제로 인해 환자가 고통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내시경을 한 뒤 궤양제를 드시죠”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게 의료진의 한탄이다.
이 대학병원 교수는 “항암제 투여시 환자가 뻔히 위통으로 고통받을 것이 예상되는데 위에서 피가 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시경으로 들여다보고 약을 주라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특히 백혈병 같은 혈액암은 출혈을 절대적으로 예방해야 하는데 복지부 지침대로 한다면 어이없게도 출혈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처치료, 즉 ‘Dressing’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Dressing은 주 2회에 한해 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처가 깊거나 위중할 때에는 하루에도 수차례 처치를 해야 한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는 “현 급여체계는 평균적인 환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지침이기 때문에 평균 이상의 병증을 가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결국 추가비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면서 “이 비용은 결국 누군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는 “공단에 청구하면 모두 삭감되는 것이 현실이어서 환자에게 비급여로 청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허 교수는 “보험심사기준대로 치료했지만 환자가 그 이상의 치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를 거부할 수도 없고, 치료하고 비용을 받으면 부당청구가 되는데 도대체 의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들은 환자단체들이 부도덕한 기관으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응이다.
정부의 잘못된 심사기준을 비판해야 할 환자단체들이 왜 비난의 화살을 의료기관으로 날리는 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야 임의 비급여 문제 해결된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정부에게 있는 셈이다.
깊어지고 있는 환자와 병원간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건 복지부와 심평원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와 함께 요양급여기준의 합리적인 개정도 시급하다. 급여기준를 완화해 실질적으로 보장성을 강화하고, 현실에 맞게 심사지침을 개정해야 한다는 게 환자단체와 의료기관의 공통된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 역시 정부 몫이다.
의료기관과 관련 학회들도 이 같은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으며, 백혈병 환우회도 6일 심평원을 방문해 급여기준의 합리적인 개정을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