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임의 비급여 문제가 터지면서 병원과 환자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환자들은 병원이 부당한 진료비를 부과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는 반면 병원들은 요양급여기준이 문제라고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자와 병원의 갈등의 원인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요양급여기준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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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의 비급여는 건강보험의 사생아 <하>예고된 갈등..정부는 해법을 알고 있다
지난 2일 건강세상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하는 ‘환자권리를 위한 환우회연합모임’은 ‘진료비확인요청제도’ 설명회를 열었다.
환자들에게 임의 비급여 등 병원의 진료비 부당 징수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진료비확인요청제도’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취지였다.
자신이 낸 진료비가 부당하지 않은지 확인하고 이를 통해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면 심평원에 민원을 제기해 바로 잡아나가자는 것이다.
환자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들 환자단체의 조직화된 목소리는 결국 가톨릭대 성모병원의 진료비 불법 과다 징수를 폭로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언론은 주목했다.
의료영역에서 환자와 환자단체, 이들과 연대하는 시민단체의 힘은 점차 막강해지고 있으며 영향력 역시 커져가는 추세다.
잘 알려진 ‘글리벡 투쟁’을 시작으로 환자들은 ‘진료를 받아야 하는 수동적 입장’에서 탈피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아스트라제네카 폐암치료제인 ‘이레사’ 약가 인하 운동을 벌여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여기다가 선택진료제, 상급병실료 문제 등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협상 파트너로 자리잡고 있다.
성모병원의 임의 비급여 폭로사건 역시 이런 일련의 환자 권리투쟁과 맥을 같이한다.
백혈병 치료를 위해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엄청난 진료비가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병원이 말하는 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는 “환자들은 의료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이지만 의료의 변방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제는 환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을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병을 치료받아야 하는 단순한 환자에서 탈피해 조직화하고, 연대하면서 질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환자들이 병원에서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의료기관은 이들을 의료의 한 축으로 받아들일 자세와 준비가 돼 있을까.
임의 비급여사건이 터지자 성모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들은 “현 요양급여기준에서 임의비급여 부분은 어쩔수 없는 게 현실인데 왜 우리에게 돌을 던지느냐”며 방어하는데만 급급하다.
의료기관이 진료의 중심축이라는 구태를 벗지 못한 이유이다. 다시 말하면 환자들을 동반자로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현 의료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백혈병환우회의 안기종 대표는 “현 요양급여기준 상 환자의 치료를 위해 비급여 약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환우회를 비롯한 환자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의료진이 비급여 약제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그 타당성을 입증해 준다면 환자들은 기꺼이 주머니를 열어 그 약제비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의료기관들은 ‘친절하게’ 임의 비급여에 대해 설명했으면 됐지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식으로 여전히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병원들이 환자 중심의 진료를 표방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진료의 중심은 의사라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단순히 보여지는 ‘친절’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환자단체를 의료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의료기관과 의료단체가 요양급여기준 개선을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합리적 급여기준 마련, 의료계·환자 연대 절실
사실 임의비급여를 비롯한 현 요양급여기준체계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는 의료계 전체가 개선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던 일이다.
의협과 병협을 비롯한 의료단체는 물론 각 학회도 정부에 지속적으로 지적했던 사항이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백혈병환우회 등 환자단체의 비판이 제기되면서 급여기준 개선의 목소리가 공론화의 문을 열었다.
실제로 환우회의 문제제기로 인해 의료기관과 환자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재 불합리하게 제정된 요양급여심사지침에 대한 대폭적인 수정작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도 높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항목별로 몇개 항목을 급여에 등재시키는 허울뿐인 보장성 강화정책보다는 백혈병 등 중증질환자들의 치료가 보다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환자와 의료기관의 권리는 보장하는 진정한 보장성 강화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사무국장은 “백혈병과 같은 중증질환의 경우 그 치료를 위해 사용된 약제와 시술비 중 환자에게 필수적인 조치였음이 증명되는 경우 비록 비급여 약제라 하더라도 급여로 인정해 주는 등의 실질적 보장 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제언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는 “의료제도의 모순점을 개선하지 않고 의사와 의료기관을 불법으로 과다한 진료비를 챙기는 부도덕한 기관으로 매도하면 결국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불신은 증폭될 수 밖에 없다”며 “현행 행위별 수가제도의 문제점을 분석해 보다 합리적인 급여제도를 마련해 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결국 환자와 의사간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열쇠는 복지부가 쥐고 있는 셈”이라며 “합리적인 급여기준 개선으로 잃어버린 신뢰를 찾아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들이 수년간 개선을 요구했던 임의 비급여.
그들은 이를 공론화하는데 실패했지만 환자단체들은 단번에 여론을 환기시키는데 성공했다.
의료계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료계가 환자들을 ‘진료를 받아야 할 대상’만으로 인식하는 구태를 벗지 못하면 멀지 않아 과거 환자들이 머물던 ‘의료의 변방’ 자리로 밀려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절실한 시점이다.